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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 - 참고문헌 : 임오식년사마방목(壬午式年司馬榜目), 고령대관(1959년) ●이성일(李聖一)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일지(一之)이고 호는 죽창(竹窓)이다. 처사(處士 ) 준곤(俊坤)과 호군(護軍)을 지낸 정중(鼎重)의 딸인 고령김씨(高靈金氏)사이에서 숙종 6년(1680년) 11월 13일에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 외가에서 장남으로 태어 났다. 청천(靑泉) 신유한(申維翰)선생과 함께 공부하고 향시(鄕試)에 3번 장원 하고 영조 5년(1729년) 진사시(進士試)에 입격(入格)하였으나 과거나 벼슬에 뜻을 버리고 향리에서 후학을 양성하였으며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이 드러났다 . 영조 28년(1752년) 1월 29일 졸(卒)하였고 유고(遺稿) 3권이 전한다. 묘는 개 진면 직동 사례(舍禮) 선영 왼쪽 해좌(亥坐)에 있다. 배위는 진사(進士) 선영(善 韺)의 딸인 진양정씨(晋陽鄭氏)이며 묘는 쌍분(雙墳)이다. 참고문헌 : 경주이씨대동보(기미보), 고령군지(1996년), 고령세거성씨편람 ●이영훈(李英勳) 본관은 성산(星山)이고 초휘는 석훈(錫勳)이며 자는 낙칠(洛七), 호는 옥서(玉 西)이다. 유생 인학(寅鶴)과 현감 사묵(思默)의 딸인 일선김씨(一善金氏) 사이에 서 철종 11년(1860년) 1월 26일 태어났다.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 문하에 서 수업하였다. 고종 16년(1879년) 식년(式年) 생원시(生員試)에 장원(壯元)으 로 입격(入格)하였다. 천자(天姿)가 명민(明敏)하고 일찍이 문견(聞見)과 학식 (學識)이 있었다. 예를 아끼고 의리를 좋아했으며 마치 미치지 못할까 염려하 였다. 사람을 접대함에 대나무가 칼날을 맞이하듯이 능란하게 처리하였다. 종당(宗黨 : 일족의 무리)은 기둥이 될 만한 인물(人物)로 믿고 사우(士友)들은 공부를 도와주는 것을 기대하였으나 불행하게도 고종 24년(1887년) 6월 6일 향년 28세로 일찍 세상을 떠나시니 사람들이 모두 애달파서 아깝게 여겼다 . 묘는 성주군 수륜면 월촌(月村) 안산(案山) 상정(上頂) 간좌(艮坐)에 있다. 유고 (遺稿) 1권이 전한다. 배위는 교리(校理) 신영(臣榮)의 딸인 광주이씨(廣州李氏 )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