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page

- 130 - 로 인조 12년(1634년) 태어났다. 현종 10년(1669년) 식년(式年) 생원시(生員 試)에 입격(入格)하였다. 졸년(卒年) 및 배위 성씨(姓氏) 실전(失傳)이다. 묘는 고령군 우곡면 답곡에 있다. 참고문헌 : 기유식년사마방목(己酉式年司馬榜目), 고령대관(1959년) ●곽명한(郭溟翰) 본관은 현풍(玄風)이며 자는 남위(南爲)이고 호는 동호(東湖)이다. 연(延)과 통 덕랑(通德郞) 흡(潝)의 딸인 풍산류씨(豊山柳氏) 사이에서 영조 46년(1770년 ) 태어났다. 정조 19년(1795년) 식년(式年) 생원시(生員試)에 입격(入格)하였다 . 두와(蠹窩) 최흥벽(崔興璧)이 공의 학문의 진척 상황이나 근황을 전하는 서(書 ) 와 만시(輓詩)를 지었고 이조정랑(吏曹正郞)을 지내고 홍문관(弘文館) 부제학 (副提學)에 추증(追贈)된 송서(松西) 강운(姜橒)이 제문(祭文)을 지었던 것으로 보아 두와(蠹窩) 최흥벽(崔興璧), 송서(松西) 강운(姜橒)과 친밀하게 교유(交遊 ) 하였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1806년 대구 관덕정(觀德亭)에서 경상도관찰사 (慶尙道觀察使) 윤광안(尹光顔)이 주인(主人)이 되어 도내 유생 1,000명을 초청 하여 베푼 향음주례(鄕飮酒禮) 행사에서 악정(樂正)을 맡았다고 한다. 순조 9년 (1809년) 9월 16일 향년 40세로 졸(卒)하였다. 묘는 현풍 답곡면 희정동 안산 (案山) 신좌(辛坐)이다. 배위는 중용(重龍)의 딸인 진보이씨(眞寶李氏)이다. 시 문집(詩文集)인 동호유고(東湖遺稿)는 시·만사 54수, 부 1편, 서(書) 54편, 제문 6편, 잡저 5편, 명(銘) 2편, 의(義) 2편, 서(序) 1편, 부록으로 시·만사 95편 , 제문 31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군신간(君臣間)의 우애(友愛)는 백세(百世)에 모범이 됨을 강조하였던 「문왕손자본지백세범주지사불현역세(文王孫子本支百 世凡周之士不顯亦世)」, 임진왜란 때 많은 공을 세운 이로(李魯) 공적에 대한 포상과 시호(諡號)를 청구하기 위해서 회합(會合)을 가지자는 글인 「통유열읍 문(通諭列邑文)」과 선현들의 사적을 보수해 선행(善行)을 권장(勸獎)하고 풍속 (風俗)을 진작(振作)시킬 것을 권하는 「정현풍관장(呈玄風官狀)」, 세거지인 현 재 고령군 쌍림면 귀원리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를 담은 구담야화(龜潭夜話), 미 숭산 기우제문(美崇山祈雨祭文), 동계(桐溪) 정온(鄭蘊) 선생을 모신 재사(齋舍 ) 인 모리재(某里齋)와 정문(正門)의 누각(樓閣)인 화엽루(花葉樓)를 중수(重修)할 것을 경상도 유생(儒生)에게 알린 「통유향중각문문(通諭鄕中各門文)」, 장서(藏 書)의 중요한 의의를 설명한 「장서각명(藏書閣銘)」 등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