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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5 - 올랐던 몽계(夢溪) 철충(哲冲)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시 랑(侍郞)을 지냈다. 조선(朝鮮)을 건국(建國)한 후 태종(太宗)이 공을 여러 차례 벼슬길에 나오도록 조정에서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累徵不起). 태종 때에 부모를 영화롭게 봉양 즉 영양(榮養)할 수 있도록 특별히 상주목사(尙州牧使 ) 에 제수(除授)하였으며 선정(善政)을 베풀어 세칭(世稱) 청백리(淸白吏)라고 불 렸다. 또한 초은(樵隱) 이인복(李仁復)이 부임(赴任)을 축하하는 시를 남겼다 . 생졸년(生卒年)은 미상(未詳)이다. 묘는 합천 현내면 산막동 마을 뒤편 왼쪽 자 좌(子坐)에 있다. 배위는 숙부인(淑夫人) 인천이씨(仁川李氏)이다. 고령군과 합 천군의 경계지점인 석절촌(石節村)에는 공이 강가에 지은 정자 즉 강정(江亭 ) 이 있었던 것으로 고령읍지(高靈邑誌)에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 청주한씨 몽계공 파보(정사보), 고령군지(1996년) ●한인적(韓因迪)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보문각(寶文閣) 직제학(直提學)을 지낸 한연(韓璉)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일명 인적(仁迪)이라고도 하며 고려 후기 문신으로 참 판(參判)을 지냈다. 생졸년(生卒年)은 미상(未詳)이다 참고문헌 : 고령군지(1996년), 청주한씨 몽계공 파보(정사보) ●한찬(韓璨)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수의부위(修義副慰)를 지낸 숭의(崇義)와 현감을 지낸 광우(光祐)의 딸인 단인(端人) 동래정씨(東萊鄭氏)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 다. 성종 때 무과(武科)에 급제한 후 우후(虞候)를 지냈다. 우후(虞候)는 관찰사 가 겸임하는 병사(兵使)나 수사(水使) 밑에는 두지 않고 전임(專任)의 병사와 수사 밑에만 1원씩 배치하였던 부직(副職)이다. 병마우후(兵馬虞候)는 종3품(從 三品)으로 병우후(兵虞候)·아장(亞將)이라고 하였다. 묘는 합천 현내 조양산(造 陽山) 유좌(酉坐)에 있다. 참고문헌 : 고령군지(1996년), 청주한씨 몽계공 파보(정사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