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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8 - 착오가 많은 책임을 물어 파직(罷職)되고, 포천抱川)으로 정역(定役)되었으나 성종 7년(1476년) 정월에 풀려났다. 성종 7년(1476년) 11월 25일 향년 60세로 기세(棄世)하였다. 묘는 고령군 덕곡면 반성리 장방동 자좌(子坐)에 있다. 고령 군 덕곡면에 있는 반암서원(盤巖書院)와 경상남도 거창군에 있는 영빈서원(瀯 濱書院)에 제향이 되었다. 시호는 양평(襄平)이다. 정종(鄭種) 적개공신(敵愾功 臣) 교서(敎書)는 보물 제1835호로 지정되어 있다. 초취(初娶)는 사정(司正)을 지낸 효흥(孝興)의 따님인 영양최씨(永陽崔氏)이고 재취(再娶)는 인덕(麟德)의 따님인 전의이씨(全義李氏)이다. 참고문헌 : 정종(鄭種) 적개공신(敵愾功臣) 교서(敎書), 정종(鄭種) 무과홍패(武 科紅牌), 단종실록, 세조실록, 동래정씨 정절공 파보(계축보) ●정한섭(丁漢燮) 본관은 나주(羅州)이며 자는 내숙(內淑)이고 호는 춘포(春浦)이다. 수직(壽職 ) 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를 지낸 대찬(大贊)과 숙부인(淑夫人) 김해김씨(金海金 氏) 사이에서 철종 5년(1854년) 2월 2일 태어났다. 용양위(龍驤衛) 부사과(副 司果)를 지냈다. 1913년 11월 15일 향년 60세로 졸(卒)하였다. 묘는 고령군 개진면 봉동 왜진산(倭津山) 해좌(亥坐)이다. 배위는 경주이씨(慶州李氏)이다. 참고문헌 : 고령군지(1959년), 나주정씨 초암공파 족보(기묘보) ●정호영(鄭好英) 본관은 진양(晋陽)이며 자는 경백(敬伯)이다. 아버지 의권(義權)과 어머니 광 산김씨(光山金氏) 사이에서 태어나셨다. 생졸년(生卒年)은 미상(未詳)이다. 겸사 복(兼司僕)을 거쳐 용양위(龍驤衛) 부사과(副司果)를 지냈다. 묘는 성주군 금수 면 신기촌 뒤 임좌(壬坐)에 있다. 배위는 김해김씨(金海金氏)이며 아버지는 천 주(天樞)로 묘는 성주군 벽진면 별미산(別美山) 오른쪽 기슭 자좌(子坐)에 있 다. 참고문헌 : 진양정씨 족보(을유보), 농산세헌(農山世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