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page

- 113 - (合窆)이며 기일은 5월17일이다. 註) 재지사족(在地士族) 성리학(性理學)을 이념으로 향촌사회에서 중소 규모 지주(地主)로서의 경제적 기반을 가지고 16세기 중후반 이후 그들 중심의 지배체제를 구축하여 나간 지 식계층(知識階層)을 일컫는 말이다. 참고문헌 : 진양정씨 족보(을유보), 고령대관(1959년) ●정석유(鄭錫儒) 본관은 동래(東萊)이며 자는 중진(仲珍)이고 호는 행은(行隱)이다. 진사(進士 ) 를 지낸 홍일(弘鎰)과 통제사(統制使)를 지낸 유(瀏)의 딸인 평산신씨(平山申 氏) 사이에서 숙종 15년(1689년)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명민(明敏)하고 재국(才 局)이 있다고 일컬어졌다. 영조 13년(1737년) 별시(別試) 문과(文科)에서 급제 한 후 봉상주부(奉常主簿)를 거쳐 양재찰방(良才察訪)과 경기가도사(京畿假都 事)를 지냈다. 학행(學行)과 문장(文章)이 세상에 드러났으며 영조 32년(175 6 년) 9월 1일 향년 68세로 졸(卒)하였다. 묘는 선비(先妣)의 묘 아래에 있다. 문 집(文集) 1권이 전한다. 배위는 시기(始基)의 딸인 고창오씨(高敞吳氏)이다. 참고문헌 :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동래정씨 정절공 파보(계축보) ●정선경(鄭善卿) 본관은 동래(東萊)이며 자는 선지(善之)이고 호는 반곡재(盤谷齋)이다. 의정부 (議政府) 찬성(贊成)을 지낸 정절공(靖節公) 정구(鄭矩)의 차남으로 태조 4년 (1395년)에 태어났다. 내섬시(內贍寺) 판관(判官)을 지냈다. 공은 ‘동래정씨(東 萊鄭氏) 정절공파(靖節公派) 고령입향조(高靈入鄕祖)’가 된다. 세종 24년(144 2 년) 8월 25일 졸(卒)하였다. 묘는 고령군 덕곡면 반성리 장방동 자좌(子坐)이 다. 공의 장남 종(種)이 단종 1년(1453년) 종성절제사(鍾城節制使)로 재임 중에 함길도절제사(咸吉道節制使) 이징옥(李澄玉)의 난(亂)을 당하여 그를 포살(捕 殺)한 공(功)과 세조 13년(1467년) 함경도(咸鏡道)의 호족(豪族) 이시애(李施愛 ) 가 일으킨 반란(反亂)을 총통도장(銃筒都將) 이종(李徖) 휘하에서 부장(副將)으 로 참전하여 평정(平定)한 공(功)으로 적개공신3등(敵愾功臣三等)에 책록(册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