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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9 - 조양곡 경좌(庚坐)에 있으며 종후손 정헌공(鄭憲公) 원조(源祚)가 비문을 짓고 지애(芝崖) 정위(鄭煒)가 행장을 지었다. 배위는 충의교위(忠義校尉)를 지낸 섭 (涉)의 딸 철성이씨(鐵城李氏)이다. 註1) 유일(遺逸):초야에 묻혀있는 선비로서 학식과 인품을 갖추고 있으면서 세 상에 알려지지 않은 경우 이들을 과거시험 없이 발탁하는 인재등용 방법이다. 註2) 성하(城下)의 맹세((盟誓):병자호란 때 청나라에게 항쟁을 하였던 인조가 항복하고 1637년 1월 30일 남한산성을 나와서 성 밑인 한강의 동쪽에 위치한 삼전도(三田渡)에서 인조(仁祖)가 청나라 태종(太宗)에게 세 번 절하고 한번 절 할 때마다 세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 고두례 (三拜九敲頭禮)의 의식을 행 하여 신하(臣下)의 맹세를 하였던 굴욕적인 맹세를 뜻한다. 참고문헌 : 괴당문집(槐堂文集), 성산이씨 세보(무자보), 숭정8년을해10월초 4일증광사마방목 ●정규홍(丁奎洪) 본관은 나주(羅州)이며 자는 경칠(敬七)이다. 참봉(參奉)을 지낸 순섭(順燮)과 대우(大佑)의 딸인 밀양박씨(密陽朴氏) 사이에서 고종 3년(1866년) 태어났다 . 음사(蔭仕)로 도사(都事)를 거쳐 군수(郡守)를 지냈다. 1943년 6월 15일 졸(卒 ) 하였다. 묘는 고령군 개진면 개포동 개산 미좌(未坐)이다. 배위는 회오(回五)의 딸인 회덕송씨(懷德宋氏)이다. 참고문헌 : 나주정씨 초암공파 족보(기묘보), 고령세거성씨편람 ●정대년(鄭大年) 본관은 동래(東萊)이며 자는 경로(景老)이고 호는 사암(思菴)이다. 중종(中宗 ) 4년(1509년) 기사(己巳) 별시(別試) 문과(文科)에 급제한 후 예문관(藝文館) 대 교(待敎)를 거쳐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추증되었던 전(荃)과 참판(參判)을 지낸 극정(克正)의 딸인 거창신씨(居昌愼氏) 사이에서 장남으로 연산군 9년(1503년 ) 고령군 덕곡면 반성리 장방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슬기로워서 보통 아이들과 달랐다. 나이 11세 되던 때에 부친께서 할머니 복상중(服喪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