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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3 - 겉 검다고 속까지 검겠느냐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 註1) 사은사(謝恩使):중국에서 우리의 왕실이나 국가에 호의를 베풀었을 때 사 례하기 위해 파견한 임시 사절의 하나이다. 註2) 진하사(進賀使):조선 시대 중국에 보낸 임시 사신의 하나. 중국 황실에 경 사가 났을 때 파견된 축하 사신으로 주로 새 황제의 등극, 존호(尊號)•존시(尊 諡), 황태자•황후 등의 책립을 비롯하여 외적의 토평(討平) 등을 축하하기 위해 보냈다. 참고문헌 : 고려사, 고령대관(1959년), 고령기네스(2016년) ●이천령(李千齡) 본관은 여주(驪州)이고 자는 인수(仁叟)이며 일명(一名) 사령(士齡)이라 한다 . 수직(壽職)으로 절충장군(折衝將軍)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증직(贈職 ) 받은 형(衡)과 숙부인(淑夫人) 안동권씨(安東權氏) 사이에서 장남으로 명종 1 1 년(1556년)에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유학(儒學)에 힘을 쏟는 한편 병서(兵書)를 읽고 활쏘기와 말타기를 익혀 무장(武將)으로서 자질을 갖추었다. 34세가 되자 선조(宣祖) 22년(1589) 4월 실시된 기축(己丑) 무과(武科) 증광시(增廣試)에 동 향(同鄕)인 진양인(晋陽人) 정상례(鄭尙禮)와 함께 급제(及第)하였다. 임진왜란 이 일어나자 고령현 최초 전투인 풍곡전투(楓谷戰鬪)에서 세운 공의 전공(戰 功)을 경상우도병마절도사(慶尙右道兵馬節度使) 조대곤(曺大坤)이 치계(馳啓)하 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경상우도병마절도사(慶尙右道兵馬節度使) 조 대곤(曺大坤)이 치계(馳啓)하였다. 5월 23일에 적은 무리의 왜적들이 고령현(高 靈縣) 풍곡리(楓谷里)에 침입했는데, 박경록(朴景祿)·김응겸(金應謙)·정상례(鄭 尙禮)·손호(孫浩)·이천령(李千齡)·최경립(崔景立) 등이 먼저 왜적 4∼5명을 쏘니 적이 퇴주(退走)하거늘 훈련 봉사(訓鍊奉事) 홍걸(洪傑)이 돌진하여 그들을 베 었습니다." 김송암(金松庵)이 열읍(列邑 : 여러 고을)에 통문(通文)을 보내 기병 유사(起兵有司)를 정하는 등 정식으로 기병(起兵)한 것은 정경운(鄭慶雲)이 쓴 고대일록(孤臺日錄)에 의하면 1592년 5월 22일이었다. 따라서 풍곡리전투(楓 谷里戰鬪)는 공식적인 기록으로 볼 때 임난(壬亂) 발발시(勃發時) 고령현(高靈 縣) 최초의 전투이다. 풍곡리전투(楓谷里戰鬪)의 승패(勝敗)는 향후 거주지 단 위로 전개된 의병활동(義兵活動)의 사기(士氣)를 진작(振作)시키고 의병(義兵)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