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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박상건 唐津文化院 며치밀하고영특한둘째아들림병무를당대의애국지사인의병장최동식에게극비밀리에 자주연락을 위하여의병활동을하도록하는임무를띄게하여의병운동의후원자이며숨은애국운동원 이었다. 림예상은지방부자이며선비이기때문에경인지역을자주드나들었다.한번은유성기(有聲 器:현전축) 를사와희귀물인지라지방민이몰려와날마다유성기를들려주며시국이야기도하여반일 감정을심어 주기도하였다.때로는개화사상을고취하기도하였으며인천개항이래무역하던객주(客主 )와연결하여 많은재산을치부하기도하여기회있을때마다자기의사상을숨어서설파하는데에도매 우편리하도 록생활의폭을넓혀서애국운동을하였다.한편으로는여러차례에걸쳐림병무를시켜당 나귀를태워 엽전으로된군자금(軍資金)을수차례에걸쳐밀약된장소로헌납하였으니남모르게숨어 서을사보호 조약을반대한우국지사이다.충남관찰사(忠南觀察使)최정덕의내부대신(內部大臣)박제순 에게보고한 내용에의하면「1909.5.20저녁당진군내맹면고대리에두목을알수없는폭도4명이 와서림예상 (林禮相),홍종문(洪鍾文),원세희(元世熙)집에들러군자금을요구했으며1905.5.21당진 군한천(寒泉) 에서는두목최동식(崔東植)의부하3명이들어와홍종체(洪鍾締),홍종원(洪鍾原)집에들러 이두사람 을큰마섬(大馬島)입구까지데리고갔다가놔줬으며위두사건은같은범인소행으로 4월27일면 천군(沔川郡)해안에서조난당한일본사람후꾸다(福田淸松)외1명을살해한살인범」이라고 기술했다. 그뒤에구국의차원에서후진양성을위한교육의필요성을느껴삼봉(三峰)국민학교대지 를전부희 사하여학교건립에힘쓰는한편고향발전에공헌하다가해방을보고죽겠다는열망의광복 을보지못한 채향년81세로1941.4.29눈을감고말았다. 묘(墓)는석문면교로리에있으면종손(宗孫)은서울잠실에림종범(林鍾範)이가있고증 손에현재수 산청이사관국장으로림종국(林鍾國)이있어증조의유지를받들어고향과친지를잊지않 고봉사활동 에힘쓰고있다. 19.정선경(鄭善京) 당지군외맹면찬동(讚洞)(현석문면삼화리)에서1862년생으로이고장에서성장하여1 906년이래 의병장최종성(崔鍾成)과함께활동한의병장으로당시47세로1909년5월15일의병장최 종성과함께 의병20여명을무장시켜인솔하고이고장출신하군배(河君輩57세)또당진행정리1통 5호(一統五 戶)출신심주현(沈周鉉38세)등과찬동을지나다가밀보에의한당진주재소순사기십명 이즉시출동 하여일병과의병은치열한교전이벌어졌다.그러나의병은중과부족으로2명의부상을입 은채총(銃) 1점을노획당하고모두철수할즈음불행하게도정선경,하군배,심주현3명은체포당하여 혹독한고문 과옥고를치렀다.물론경기,충남각지에서의병활동을하다가1908년10월에다른의병부 대는왜놈에 몰려같은동료군관들이해산되더라도정선경은끝까지투쟁하다가이렇게체포되어곤욕 을치르게된 것이다. 20.림정규(林廷奎:일명致明) 림정규는나주림씨(羅州林氏)이며고대면옥현리산49번지에서부병우(炳佑)모신평이씨 사이에서 차남으로1860년출생하여한문을수학하다가1885년대호지면송전리에이주하여동학천 도교에입교 한후독실한신자로서,기운이장사로불난집에들어가벼1섬이든독을동아줄로매어 혼자어깨에 메고나왔다고하여별명이호랑이였다고한다.1905년누님이초락도가(賈)씨에게출가하 여그지방인 국화도,풍도,난지도등지를다니며1905년부터의병으로반일투쟁을벌였다.해미군,당진 군,면천군의 병활동을계속하다가석문찬동교전부대와연루되어대호지면송전리(大湖芝面松田里) 집대밭(竹田) 에숨어서가족의짚신을삼고있을때질서(姪壻)김승팔의발설로체포되어송전리고지내세내받이 냇가에서형언할수없는참혹하고잔인한방법으로거세(去勢)를당하여학살되니냇물이피로빨갛게 물들었다고하며이때가1909.5.20.44세로생을마쳤다.이때왜경이씨를말린다며아들까지죽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