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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 논산의 어제이야기 많게는 10여명 씩 차출하였다. 이런 육체적인 고통 외에 정신적 압박도 심해 감내하기가 점점 어려 워졌다. 이러던 중 음력 7월 말경 아버지께서 백방으로 생각하시다가 복구대 로 자원을 하여 출정 하시면서 “내가 떠난 후 언제든지 소식이 있으면 속히 그곳으로 찾아오라” 고 말씀 하셨다. 그리고 이 세상은 머지않아 정상으로 회복될 것이니 매사를 조심하 고 남들의 입줄에 오르내리는 일 없도록 하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옆집 의 셋째 외숙과 함께 떠나셨다. 그 무렵 나에게는 마을 인민위원장으로부터 면(面)에서 실시하는 면 (面) 가창대에 나가 노래를 배워서 마을에 와서 가르쳐 달라는 부탁이 있었다. 그날부터 곧바로 면 가창대에 나가 하루에 3시간씩 2일간 노래를 배 우고 돌아와 인민위원장에게 노래 배운 내용을 이야기 했다. 그랬더니 마을 사람들을 소집하면 연락할테니 와서 노래를 가르치라 고 했다. 이후 집에서 기다렸으나 무슨 사정인지 소식이 없었다. 집안의 농사일은 어머니께서 말씀 하시면 타인들 인부는 구할 수 없는 상황이라 친척되는 분들께 말씀드려 그분들의 도움을 받아 농사일을 하게 되는데 이마저 귀먹은 욕거리가 됐다. 즉 “제까짓게 싫컷 농사지면 뭘해? 가을 추수는 새로 분배받은 아무 개가 할 것인데” 하는 등... 이렇게 지내든 중 음력 8월 13일 오전에 아버지와 함께 복구대로 출 정하셨던 외숙께서 돌아오시어 아버지 계신 곳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께 벌곡면 대목골 어머니의 친정 숙부(나의 외종조부)댁 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