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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 논산의 어제이야기 해방 후 좌우익의 대립 때는 근동의 형편이 대부분이 없이 사는 사람 들이고 잘 사는 사람은 몇 사람 안 되는 상황에서 좌익 하는 사람들이 못사는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노동자 농민의 환심을 사는 이야기를 하 여 조직화 하였다. 그러는데 6.25가 나자 좌익의 세상이 되었다. 우리 동네는 아주 넉넉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런대로 자기농사 지 어서 먹고는 사는 형편이었기 때문에 좌익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또 사람들도 온순한 편이어서 큰 피해는 없었다. 그런데 인민군이 내려오고 공산 치하가 됐을 때 우리 동네 등 너머 가는골 동네에 마을 인민위원회 사무실이 설치되었는데 이장 반장 등 우익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데려다 두들겨 패고 하였다. 그리고 우익 쪽 사람들은 거의 남쪽으로 피난을 갔는데 그 가족들을 잡아다 찾아내라며 구타하고 하는 일이 있었다. 당시 우리 동네와 인근 마을에서도 비교적 많이 배우고 지식인층에 속하던 사람들 중 좌익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인민군 치하에 있을 때 의용군을 모집 하여 보내는 일이 있었는데 18세 이던 나도 해당이 됐다. 마을에서는 강제적으로 모집하여 보내는 것이지만 면단위에 모이게 되면 본인이 자원해서 온 것으로 취급한다. 나도 마을에서 차출되어 면소재지가 있는 가야곡면 육곡리에 가서 하루를 자고 다시 현재의 양촌면 반곡리 반곡초등학교 앞의 소나무 숲 에 가서 3일을 대기 하며 북한의 노래도 부르고 하며 있었다. 당시도 소나무 숲이 지금처럼 우거져 있었는데 오늘날 봐도 소나무 숲이 그 때와 거의 같은 느낌이다. 그렇게 3일을 있는데 어머니와 형님께서 나를 찾아 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