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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 논산의 어제이야기 생명을 지켜준 고마운 항아리. 자손들에게도 그 때의 이야기와 함께 이 항아리를 물려줄 것이라고 말하며 항아리 옆에서 사진을 찍은 이용휘씨 6. 이용휘(1932. 3. 29생) 일제 강점기인 당시 학교 들어가기 전의 기억은 별다른게 없고 9살에 보통학교 1학년에 들어갔다. 처음 1학기 때는 한글을 배웠는데 2학기부터는 일본어가 국어가 되고 다른 교과도 일본어로 수업을 했다. 그리고 말이 공부지 실제로는 부역42)을 한거나 다름없었다. 2학년 때 부터는 학교 운동장을 어린 학생들을 시켜 전부 밭으로 일 구어 고구마를 심었다. 이보다 앞서 고구마 종43) 을 내 기 위해 화단에는 큰 구덩이를 파 고 풀을 베어다 넣고, 인분을 퍼다 넣고 또 거친 퇴비도 넣고 밟은 후 흙을 덮어 이 퇴비들이 썩으면 서 내는 발효열을 이용하여 고구 마 종을 냈다. 학교에 갈 때 아예 풀 베는데 사용할 깔 44) 망태에 낫과 호맹이를 42) 부역(賦役) : 공공사업을 위해 주민을 동원하여 아무런 대가 없이 일을 시키던 제도로 농촌 지역에는 1980년대 중반 까지도 길 부역 이라 하여 주민을 동원 도로정비를 시키는 관습이 남아있었다. 43) 고구마 종(種) : 고구마는 싹이 나게 하여 그 싹을 잘라 밭에 심는데 요즘처럼 비닐 하우스, 농업용 난방기 등이 없던 시절, 이른 봄에 두엄 썩는 열을 이용하여 고구마의 싹을 틔웠는데 이것을 “고구마 종낸다” 고 한다 44) 깔 : 소 먹이로 주기 위 해 베어온 풀. 표준어는 “꼴”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