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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 논산의 어제이야기 이런 생각을 할 때 마다 언제 어느 상황에서건 지도자들의 슬기롭고 현명한 대처가 얼마나 중요 한지를 절실히 느끼게 된다. 그리고 내가 감옥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 하나를 더 이야기 하면 그 당시 나처럼 사상범들은 처음에는 한사람 씩 따로 단독 감방에 가두었다. 이러니 누구와 대화를 나눌 수도 없고 무슨 취미를 가지거나 어디에 마음을 둘 곳이 없었다. 그래서 하루에 한 장씩 화장지로 나오는 피딱지 종이41)를 모으기로 했다. 먹는 것도 죽지 않을 정도로 주니 대변도 며칠 만에 한번 씩 보게 되 고 또 워낙 적은 양을 먹으니 완전 소화가 돼서 그런지 화장지를 써야 할 일도 별로 없어 종이가 남았다. 한 장 두 장 모은 종이가 한달 두달 일년 이년 모이니 제법 쌓여 가고 오로지 종이가 모아지는데 마음을 두다보니 재미가 붙어 다음 달에는 얼마나 모아질까? 하는 기대감도 생기고 또 지루한 감방생활도 잊어지 고 좋았다. 그런데 얼마 후 여럿이 함께 생활하는 방으로 옮기게 되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내가 제안을 했다. 우리는 모두가 평등하게 잘 살자는 목표를 가진 공산주의를 하는 사 람들 아니냐? 그런데 우리가 각자 이렇게 따로 자기 소유재산을 모으 는 것은 원래 우리의 사상과는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이 종이를 공동으로 모아놓고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만 큼만 가져다 쓰자! 그러고 남는 것이 있으면 그건 공동물품으로 하자! 41) 피딱지 종이 : 닥나무의 껍질 부분 등 질이 낮은 펄프로 만든 저급한 종이로 주로 벽에 도배를 하기 위해 흙벽에 미리 바르는 초배지로 쓰였다. 그리고 요즘처럼 두루마리 화장지가 일반화되기 이전 화장지로도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