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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들에게 듣는 논산의 근․현대사 이야기 / 55 어 왔기에 왜 그렇게 우리 동네에서 사람이 많이 죽었습니까? 하고 물 으니 면의 선전조직책이 잘못해서 그런 일이 났다고 했다. 노동당 조직은 도(道), 군(郡) 까지는 당위원장이 있고 그 아래에 선 전부와 조직부가 따로 있으나 면에는 연락기구라 하여 면 위원장이 있 고 그 아래에 선전과 조직을 함께 맡고 있는 선전조직책이 있다. 그런데 우리면 연락기구의 위원장을 맡았던 사람은 일자무식이었는 데 그는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 중 6.25가 나서 인민군이 서울 인천 등에 쳐들어와 형무소에 갇혀있던 사람들을 석방 할 때 풀려 나와 유공자로 우리면(面)의 위원장이 됐다. 그런데 그 밑에 선전조직책을 맡았던 사람은 평소 과격한 성격의 소 유자였는데 우리 마을과는 바로 이웃 마을에 살았다. 그리고 우리 마을에는 친구와 친척 등 선전조직책과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원래 북한의 공산당 체제는 당이 최고 우위에 있기 때문에 당에서 어떤 지시가 내려오면 절대 적으로 그대로 시행해야 한다. 당시 우리면 같은 경우 이 선전조직책의 지시에 의해 좌익에 적극 가 담하여 협조 하지 않는 사람들을 전부 잡아다 처형 하였다. 왜냐 하면 향후 국군이 점령 했을 때 누구누구가 좌익을 했다고 알려 줄 만 한 사람들은 다 잡아다 처형을 하라는 것이었다. 우리 마을이 가장 심했고 이웃의 다른 몇 개 마을이 호응 했으며 각 마을의 책임자들이 알아서 슬기롭게 잘 대처 한 마을은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 그런데 유독 우리 마을 만 80여 세대 되는 마을에서 54명이나 되는 큰 희생자를 냈는데 좌익이 25명 우익이 29명이나 죽는 참사가 일어났 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