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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 논산의 어제이야기 그런데 나의 은신처에 내 동생이 밥을 날라다 주는걸 동네사람이 보 고 신고를 하여 체포되었다. 그러니까 1951년 9월15일 대둔산을 내려와 집으로 왔고 계속 숨어 지내다 약 1달 후 체포되었다. 이후 재판을 거쳐 13년 8개월 동안 징역을 살고 석방되었다. 대둔산에 있을 당시 충남 도당 위원장은 박우연 이었는데 가명으로 남충열 이라는 이름을 썼다. 키도 크고 인물이 잘 생겼으며 풍채가 좋아 많은 사람들이 따랐었다. 우리들은 이 사람을 “도당 아바이” 라고 불렀다. 이 사람이 어디 나타나면 어느 종교의 교주 이상으로 카리스마가 대 단 했다. 그런데 나는 감옥에 있으면서 참으로 기막힌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 것은 나보다 뒤에 들어온 사람들로부터 저 박우연이가 대둔산에 숨어 지내던 그 절박한 상황 하에서 자기가 데리고 있던 여비서와의 사 이에 아기를 낳아 업고 다녔다는 것이다. 그렇게 굶어가며 목숨을 걸고 우리들이 구해온 식량으로 배불리 먹 고 좋은 잠자리에서 자면서 그런 짓을 해서 애까지 낳았다는 것이다. 내가 그토록 하늘같이 믿고 따랐던 도당 위원장이 그런 사람이었다 니 참으로 실망스러웠고 그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사실 어린 시절에는 그리 사상이 투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조직 생활을 하다 보니 투철한 사상이 몸에 배게 되어 “국가와 민족을 위한 바른 길에 목숨을 바친다.” 는 신념을 가지고 목 숨을 걸고 고난을 이겨 왔는데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우리마을 이야기를 조금 하면, 내가 대둔산에 들어가 있는데 한참 뒤에 내가 살던 마을에 사는 일가 형뻘 되는 분이 대둔산으로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