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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들에게 듣는 논산의 근․현대사 이야기 / 45 이런 벼를 하역하고 도정된 쌀을 배에 선적할 때 많은 노동자들이 필 요 했고 이 노동자들의 단체인 노동조합이 있었다. 비단 이런 벼와 쌀 뿐 아니라 생선, 소금, 비단 등 모든 수산물과 생 필품들이 그 당시는 배에 실려 강경으로 들어와 충청도와 전라도 일대 로 팔려 나갔다. 이 때 우리나라의 기름진 쌀은 이렇게 다 빼앗아 가고는 도정 공장 한쪽에 만주에서 들여온 콩깻묵 분쇄시설을 해 놓고 콩을 압착해서 기 름을 짜냈으므로 그 찌꺼기인 콩깻묵은 우마차의 바퀴 만씩 한 크기에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있는 상태였다. 이것을 분쇄기에 넣어 콩알 만씩 하게 부수어 마대에 담아 각 읍면 별로 할당하여 배급했다. 물론 무료로 주는 것도 아니며 값을 받고 팔았는데 배고파서 굶어 죽는 형편이었으니 그것이라도 사다 먹는 수 밖에 도리가 없었다. 이 당시 농촌의 일반 농민들은 독립운동을 한다든지 하는 의식을 가 지고 표면적으로 나서서 활동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또 실제로 문맹 자가 거의 대부분이고 하루하루의 먹을거리를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었 기 때문에 1차적인 생존 문제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일본인 지주에게 논 한마지기라도 더 소작으 로 얻어 지으려고 아부하고 다니는 형편이었다. 1910년 한일합방으로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세부측량을 하게 되는데 이 때 땅 주인들은 신고를 하라고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일본인들이 신고를 받아 세금을 먹이려고 한 다는 이유로, 또는 대대로 지어온 내 땅을 뭐 별도로 신고해야 할 필요 가 없다는 안이한 생각으로 신고를 하지 않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자 일본인들은 신고 없는 땅은 전부 국유화를 시켜 동양척식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