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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들에게 듣는 논산의 근․현대사 이야기 / 43 5. ooo(대담자와의 약속에 따라 성명을 밝히지 않음) 1928년생 6.25 당시 남로당 충청남도당 조직부 지도원. 13년 8개월 복역 후 석방 나는 1928년에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 어린 시절을 거치면서 일제의 만행, 가난과 배고픔을 겪 으며 분개하는 마음을 가슴에 새기게 됐다. 일예로 마을 사람들 중 옷을 빨래 할 때 갈아입을 옷이 없어 빨래가 마를 때 까지 식구들이 이불 속에 들어가 있다가 옷이 마르면 이불 속 에서 나와 옷을 입는 집도 있었다. 또 보리 양식이 다 떨어져가고 아직 벼는 익지 않았을 때 보리 1가마 를 얻어다 먹고 불과 2개월 만에 쌀로 한가마를 갚는 이른바 곱장리 이 자를 물어주는 것도 목격했다. 그리고 자기 토지가 없는 사람들은 남의 집 일을 4~5일 해 줘야 쌀 한말을 살 수 있었다. 또 농사일이 거의 전부였던 그 시절, 일을 할 수 있는 농번기는 얼마 되지 않고 농한기에는 그냥 놀아야 했다. 이런 형편이니 가난한 사람들은 도저히 절대빈곤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다. 1930년대 일본이 만주를 점령한 후 만주에서 나는 수수, 좁쌀 등을 우리나라에 갖다 주고 쌀을 일본으로 가져갔다. 이 수수, 좁쌀은 그래도 먹을 만 했다. 그런데 2차대전이 시작 되고나서는 쌀은 전부 공출34) 해 가고 콩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