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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 논산의 어제이야기 그 때 우리집양반이 봉창23) 이서 이만한 수첩을 딱 끄내더래요. 그 수첩에다가 쪽 적어 놨더래요. 그래 그 수첩 끄내 가지구 나 이정치 좋다구... 이만저만해서 좋다구 이륵케 딱 하니 얘기 하니께 그러냐구 하면서 풀어 줘서 아무일 없었어요. 잘못 했으면 그 때 사람 상하구 집안에 이 모든 유물들 다 상하는 거 여요... 그 때 영정(명재선생 영정)은 양쪽이다 종이 바쳐서 헌 멍석이 다 말아서 동네서 젤 가난한 사람네 웃 방에다 갔다 놓구, 교지와 책들은 흔 가마니에 넣고 가마니 아구리 꿰매서 저 쇠돌네 외양간 더그매24) 에 다 얹어놓구...참 얼매나 지혜로운 일여요... 나머지 책들은 광바닥을 8~9일을 꼬박 꼭괭이루 팠어요. 낮에는 저 산으루 어디루 숨어다니구 못하니 밤으로 등잔불두 밖으 로 불빛 안새게 중방밑이다 이륵케 잘 가려서 놓구서 밤에 막걸리 한병 씩 잡숴가먼서 그렇게 흙을 파내구서 거기 바닥에는 가마니를 이렇케 깔구서 거기다 책을 조~옥 하니 늘어 놓구서 그 우에다는 왱저(왕겨) 를 허치구서 흙으로 다시 묻고는 바닥을 잘 다지구 그 우에다 보릿대를 갖다가 실실 허쳐노니 감쪽 같지 뭐야! 그래서 이 많은 책들, 유물들 다 안전하게 단 하나두 유실읍시 다 보존할 수 있었어요. 이렇게 이 유물들을 지키다 보니 피난을 못갔지요. 우리는... 그런데 나중에 인민군들이 쫏겨가구 대한민국 정부가 다시 들어와서는 우리 얘들 아부지가 부역자라구 빨갱이라구 몰아서 면사무소서 우리집 많이 뜯어먹었어요. 23) 봉창 : 호주머니 24) 더그매 : 외양간 천정에 만든 다락으로 이런 저런 허접한 물건들을 올려놓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