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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들에게 듣는 논산의 근․현대사 이야기 / 23 6.25 때는 여기 종가가 한때 인민군들의 주둔지가 되기도 했었어요. 시 아주버니께서는 경찰관 이었는데 1950년 7월 18일 강경경찰서 사수 전투에서 83명이 함께 전사 하셨어요. 시아주버니께서는 남들한테 잘 하시고 인심을 얻고 있어서 강경으로 차출되어 갈 때 식구들을 양촌 띠울(양촌면 모촌리)의 인민군이 주둔 하고 있는 집에 맞기고 갔었기 때문에 오히려 안전하게 생활 할 수 있 었어요. 그러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니 양촌에 계속 있는 것은 위험 하다 고 연락이 와서 우리 집으로 합하게 됐어요. 우리 집으로 오게 되니 마음이 그렇게 편코 좋을 수가 없었어요. 이제 죽어도 함께 죽고 살아도 함께 산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갓졌 지요. 양촌 띠울에 따로 있을 때는 안전 하다고는 해도 늘 마음이 조마조마 했었거든요. 이후 우리 집에서 형님(동서)과 조카들이 함께 살았는데 그 때부터 나는 옷도 화려한 색깔 들어간 것을 피하고 무색 것 입기 시작하여 오 늘날 까지도 멋이라고는 모르고 이렇게 수수한 것을 입고 산답니다. 형님이 시아주버니 돌아가시고 저렇게 한 많은 세상을 살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사치스런 옷 입고 호의호식 할 수 있나 하여 늘 조심스럽 게 살았어요. 그 때 조카들이 위로 딸이 셋이고 넷째가 아들이고 막내가 딸인데 유 복자였어요. 그래서 시아주버니께서는 돌아가시기 전 3살 먹은 아들을 엄청 예뻐 하시고 했는데... 그렇게 됐으니 얼마나 애석 한일여요? 여기 우리 집에 와서 살적에 여기 마루에서 밥 먹으면, 저 대문 밖으로 사람들 지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