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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 논산의 어제이야기 24. 애국지사 윤교병(愛國志士 尹喬炳) 애국지사 윤교병은 노성 병사리의 망족(望族)인 파평 윤씨의 후예로 1881년 8월 28일 상정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천성이 강 직하고 재질이 영민하였으며 학업이 일취월장하여 주위의 촉망을 받았 다. 그러나 국운이 기울어 일제의 침략 음모로 국모가 시해되고 을사조 약을 맺어 국권을 잃으니 윤공은 식음을 전폐하고 눈물을 흘리며 통분 을 금치 못했다. 윤공은 분연히 일어나 보국에 몸을 바칠 결심을 단단 히 하고 상경하였다. 그 때 나이 27세로 1907년 일제에 의해 군대가 해산되자 동서개진교육회를 조직하고 민족을 계몽하려 했으나 일제의 방해로 교육회가 와해되었다. 윤공은 고향으로 내려와 1919년 독립운 동의 일환으로 노성 장날을 기하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항일 연설 을 역설하니 군중이 자꾸 모여들어 큰 무리를 이루고 독립만세를 부르 며 시위행진을 하였다. 모여든 군중과 독립만세 행진에 당황한 일경은 주모자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찾고 있었다. 윤공은 몸을 피해 지하운 동으로 군자금 모금 운동에 나섰다. 만경 임시 연락 요원 나상필과 몰 래 만나 군자금 모금에 참여하여 충남 일대를 돌며 650원을 모아 상해 임시정부에 전달하였다.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재정부장의 직책을 맡고 군자금 모금을 위해 귀국하여 고향의 가산을 정리하여 350원을 마련하여 전달하기도 하였다. 1921년 윤공은 일경에 나상필과 함께 체 포되어 10월 2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언도 받았다. 2년 간 갖은 고문과 옥고를 치루고 출옥하였으나 1930년 9월 30일 돌아 가 상월면 지경2리 뒷산에 장사하였다. 1980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1983년 논산 군민이 뜻을 모아 그의 묘소에 그의 공적을 기리는 묘비 를 세워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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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교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