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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 논산의 어제이야기 치 못하더니 일본천황에 대한 피 끓는 항일통문을 주한외국공관에 제 출했으나 반응이 없자 一九一九년이를 재차 제출했다. 삼일운동이 일 어나매 동지들과 이에 가담했고 七월에는 李 이 順 순 和 화 李 이 元 원 根 근 秦 진 應 응 洙 수 田 전 汝 여 洙 수 등과 태극기와 팔괘기를 서울 사대문에 게양하고 항일격문을 부치 되 이 기를 파손하는 자는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큰 재앙을 입으리라 했다. 일경에게 수배되어 論 논 山 산 郡 군 連山 연산 面 면 의 산사에 피신했다가 거기서 체포되었다. 강경경찰서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고 서울복심법원까지 올 라가 二년 징역의 옥고를 치루었다. 악형의 여독으로 八년간을 기동치 못했고 몸이 회복되자 만주로 망명 七년간을 군자금 조달과 연락책으 로 광복운동에 헌신했다. 五七세 때 귀국 요양하던 중 조국광복을 보지 못하고 一九四三年 六二세로 서거하니 가정은 빈궁하고 八세의 暢 창 潤 윤 군 을 두었을 뿐이다. 정부에서는 一九七七年 건국공로포상을 추서했다. 독립운동의 불사신으로서 거룩한 얼을 기리고 임의 명복을 빌며 여기 추념비를 세운다. 一九八四年 十一月 二十二日 大 대 田 전 市 시 長 장 權 권 熙 희 鐸 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