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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 논산의 어제이야기 18. 애국지사 박기운 선생(愛國志士 朴氣運 先生) 경상북도 군위(軍威)군 악계(岳溪)면 창평(昌平)리에서 태어났다. 예수교 신도로서 1917년과 1919년 두 차례에 걸쳐 만주의 봉천성 (奉天省) 서간도에서 일본왕 대정(大正)에게 항일통문(抗日通文)을 작 성하여 발송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귀국하여 논산시 두마 면 신도안에 거주하면서 동년 7월에 이순화(李順和)·이원근(李元根)·진 응수(秦應洙)·전여수(田汝秀)·노원장(盧元長) 등 예수교도 5명과 함께 태극기와 유사한 8괘기(八卦旗)와 십자기(十字旗) 대소 십수본을 만들 어 서울의 4대문에 게양하고 항일문서(抗日文書)를 4대문의 각 성벽에 첨부하여 기도를 하면서 대한독립을 고취한 혐의로 논산시 연산면 산 사에서 은거하다가 일제 경찰에 피체되었다. 1920년 11월 20일 이로 인하여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및 불경죄로 징역 2년형을 언도받았으며, 1920년 12월 16일 고등법원 에서 형사부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인정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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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