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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시 독립유공자 금석문 / 199 게 하지 못했으니 그 죄가 만육(萬戮)의 형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원수의 나라에서 주는 불의한 금전을 어찌 받겠는가 만일 내게 강제로 준다면 차라리 서산으로 들어가거나 동해를 밟으리라.‘ 하였다. 그러자 일본헌병대장은 선생을 체포하여 감금하였다. 가족들은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일제 성냥이나 물품 등을 구입하거나 사용하지 않았다. 선생은 추운 겨울인데도 감옥에서 식음을 전폐하고 6일간 금식하면 서 일제의 회유책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항거하였다. 일본 헌병은 선 생의 불굴의 의지를 알고 선생의 아들 이래수를 회유했으나 그도 굴하 지 않자 차남 이래준을 감언이설로 달랬다. 그는 자기의 머리와 일본 천황의 머리와 바꾼다면 허락하고 금전을 받겠다고 말했다. 거절당한 일헌은 다시 선생의 손자 이 욱을 연행하여 협박하고 위협하였으나 그 도 끝내 거절하면서 조부가 거절한 것을 어찌 내가 받아서 조부의 대의 를 배반하겠는가 하고 단호하게 말하였다. 일헌이 선생의 아들과 손자 를 위협하였으나 선생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부자가 죽을 일에 죽은 들 무슨 한이 되겠는가하고 조용히 앉아 대학과 중용을 암송하였다. 이 모습을 본 일본 헌병대장은 선생의 굳은 의지를 꺾을 수 없음을 알고 고문과 추위와 단식으로 병약해진 선생을 병보석으로 읍내 여관 에 투숙 시켰다. 여관으로 가석방된 선생은 일제의 탄압으로 죽느니 차 라리 떳떳하게 자결할 것을 결심하고 1910년 12월 7일 밤 망국의 한 을 한시로 남기고 음독 자결하였다. 임종 한시는 다음과 같다. 임종시(臨終詩) 今 금 焉 언 己 기 矣 의 我 아 平生 평생 이제 내 어찌 내 한 평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