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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들에게 듣는 논산의 근․현대사 이야기 / 13 피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피난을 결심하게 된 직접적 이유는 방송에서 금강방어선을 지키기 위하여 금강 입구(즉 군산) 반경 12Km 내는 피난을 가라는 방송이 있 었다. 즉 금강 방어선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공중 폭격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집에는 안사람과 딸 둘이 있었는데 식구들은 집에 있으라 하고 자전거에 여름 옷 한 벌 매달고 군청에서 함께 학교비 사무를 보던 민 병각, 김종국과 함께 셋이서 전주쯤 피난 갔다 오자며 피난길에 나서 용안에서 하루 자는데 모기가 엄청 많아서 고생이 심했다. 여기서 이리(현 익산) 으로 갔다. 그런데 당시 아군기가 잘못하여 이리에 오폭을 하게 됐다. 이에 놀란 이리사람들도 피난길에 나섰다. 나는 국악인 신쾌동의 집에 2~3일 머물었는데 당시 단국대학에 다 니던 신쾌동씨 아들이 서울에서 내려와 현재 전개되고 있는 전황을 이 야기 해 줘서 전체적인 전황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이리(裡里) 사람들이 거의 피난에 나서니 어쩔 수없이 함께 전주로 피난길을 떠났다. 전주에 도착 했으나 갈 데도 마땅치 않고 더운 여름이어서 한벽정(현 전주 전통문화센터 옆의 냇가 정자)이 있는 냇물에서 목욕을 하고 노숙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전주도 안전한 곳이 아니니 더 내려가야 한다고 하여 또 길을 떠나 관촌서 1박하고 오수에서 1박하고 남원에서 며칠 머물었는데 방송을 들으니 논산이 폭격을 당하여 폐허가 됐다고 하여 기가 막혔다. 이제 가까운 시일 안에 논산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판단하 고 다시 길을 떠나 구례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