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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논산의 어제이야기 그러나 시일이 지날수록 피난민이 계속 남쪽을 향하여 밀려 내려왔다. 또 정보에 빠른 사람들은 라디오를 가지고 일본의 동경에서 방송하는 미국의 소리 한국말 방송을 청취하게 됐는데 거기서는 전쟁의 양상이 상당히 심각한 것으로 방송 되었다. 이후 지식층들은 우리나라 방송은 믿지 않고 이 미국의 소리 한국말 방송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그리고 북한군이 방송을 장악하고 선무방송을 하게 되자 국민들은 크게 당황하게 되었다. 논산시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논산제일감리교회에 대공 감시 초소4)를 설치하여 적군(북한군) 비행기의 출몰 사항이나 적군의 움직 임 등을 감시하여 보고 하도록 하였다. 나는 상사들에 의하여 성실한 직원으로 인정받아 징집되면 안 된다며 바로 이 감시초소 근무자로 명령 받아 근무하게 됐다. 여기서 녹음기를 가지고 폭격음을 녹음하고, 비행기의 형식, 모양, 숫자 등을 상세히 감시하여 보고하는 일을 하였다. 사전에 아군기와 적군기(敵軍機)의 구분 요령 등을 교육 받았다. 그런데 근무 중 적군 전투기가 나타나서 다른 사람들에게 함부로 말도 못하고 혼자서 속으로 당황했으며 크게 긴장한 적도 있었다. 라디오 방송은 북한군이 한강을 넘어 계속 침략해 온다고 하고 실제로 피난민이 수없이 밀려 왔다. 나는 군청에 다니면서 집에서는 약 20마지기 쯤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사태가 이미 돌이킬 수 없음을 알고 미리 일군을 사서 논매기를 마치고 4) 대공감시초소: 일제 강점 말기에 일본군이 논산 천주교회의 학교건물과(당시 대건중학교) 논산 제일 감리교회에 주둔하면서 제일 감리교회는 지대가 높아 여기 에 연합군의 전투기를 감시하는 감시초소를 운영 했었는데 이것을 6.25 때 다시 대한민국 국군이 이용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