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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 논산의 어제이야기 6. 애국지사 최영호(최 호)(愛國志士 崔濚鎬) (崔 好) 최영호(崔瀯鎬)는 항일운동(抗日運動)을 하면서 이름을 바꾸어 최호 (崔好)라 하여 모든 사람들이 최호 선생이라고 불렀다. 그는 어려서부 터 경서를 읽고 14세 되는 해에 의주로 나와 수성학교(順城學校)에서 신학문을 배우다가 학교를 그만두고 진위대(鎭衛隊)에 입대하여 활동 하였다. 1905년 11월에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에 강계진을 거쳐 경군시위대 (京軍侍衛隊)의 장교로 활동하던 중 1907년 군대 해산령이 내려지자 대일항전을 벌렸고 원임(原任) 강계진(江界陣)으로 내려가 잔유병력을 규합하여 친일파의 일진회를 타도하는데 힘을 섰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선생은 시위대의 앞장에서 만세운동을 벌이다가 일제의 탄압으로 상해로 망명하였다. 그 해 8월 21일 안창호, 홍이관, 이유필, 조동호등과 함께 독립신문을 창간하게 되었다. 1921년 7월 임정 대표단장으로 안남에 파견되어 활동하던 중 1923 년 1월 안동 교통국으로 밀파되었다. 이는 상해 임시정부의 국내 연락 을 담당하고 있는 영국회사 이륭양행의 활동을 돕기 위해서였다. 그 해 5월 독립신문을 국내 보급을 위해 일하다가 일경에 미행을 당하여 체 포되고 5년형을 받고 신의주, 원산, 함흥등지에서 옥고를 치루다가 1926년 가출옥하였다. 1927년 이상재 등과 민주대학 기성에 힘썼으나 잘 이루워지지 않자 다시 중국으로 망명하여 활동하다가 1945년 광복을 맞아 귀국하였다. 귀국 후 논산으로 내려와 경향 각지를 다니면서 독립신문 보급과 독립 협회 재건 등을 힘쓰다가 1958년 1월 30일 별세하니 향년 70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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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