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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논산의 어제이야기 한다.” 라는 “황국신민의 서사”를 복창하게 하면서 이전과 같은 근무체 계를 유지 하였다. 그리고 군청 산업과에는 하다께야마(自由山)라는 일본인 밀정노릇을 하는 자가 있어서 군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경찰과 총독부에 몰 래 보고 하므로 직원들이 그 자의 눈치를 보았고 일종의 감찰 노릇을 했었다. 16일 까지도 일본 군인들이 완전 무장을 하고 시내를 순찰 행진 하 고 다니며 무력시위를 하고 치안 질서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8월 17일 일본인 가와가미(川上)라는 강경읍장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습격을 받고 군청으로 도망쳐 와서 군수에게 신변보호를 요청 하게 되었다. 이 사람은 전에 경찰서장도 지냈던 사람으로 국가에서 지급하는 은 급 2)을 받으며 강경읍장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17일 아침 황국 신민의 서사가 끝난 다음 논산 군수가 관내 읍면의 주재소 주임(현재의 읍면 파출소장 격) 회의를 소집하였는데 당시 강경경찰서장이었던 나이또 가꾸사가 읍면 주재소 주임 앞에 나와 나 는 앞으로도 계속 조선에서 살 테니까 잘 봐달라는 부탁의 발언을 했다. 기세등등하던 일본인체제가 실질적으로 무너지고 세상이 뒤집히는 것을 실감하게 하는 사건이었다. 18일부터는 논산의 일본인들이 열차를 이용하여 대전을 거쳐 부산으로 가서 관부연락선에 타고 일본으로 돌아가기 시작 했다. 8월 말경부터 징용 갔다가 돌아오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위하여 논산 역에 배급 쌀로 구호급식소를 운영 했다. 2) 은급(恩級): 여기서는 일제 강점기 퇴직공무원에게 일종의 연금처럼 운영되던 제도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