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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학생 독립운동가 송고 홍귀주 洪貴周 선생 기적비 홍귀주(1906~1986) 선생은 화순군 동복면 구암리 243번지에서 아버지 남양 홍공 은보와 어머니 신안 주씨 영락 사이에서 4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11년부터 한문을 배우다가 1917년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동복국민학교에 입학하여 2학년 때 자퇴하고 다시 한문 서당에서 추구 사력 통감 등을 배우다가 신학문의 필요성을 재인식하고 1919년 동복국민학교에 재입학하여 졸업하고 1923년 연안명씨 명희여사와 결혼하고 1928년 도립 광주 사범학교에 입학 공부하던 중 1929년부터 나라 잃은 설움을 통감하고 독립운동을 하기위해 5인이 독립운동을 위한 비밀결사대를 조직하고 그해 7월 광주 각급 학교 단체 이름을 독서회로 통일하기로 합의하고 암약해 오다가 1929년 11월 3일 광주 학생 독립운동 시위에 전위대원으로 적극 활도해 오던 중 11월 13일 광주 서석 국민학교에서 교생 실습 도중 일본 경찰에 체포 구금되면서 가진 고문과 고초에 시달려오다가 1930년 10월 18일 대전지방법원에서 2년 6월의 형을 언도 받고 전주형무소에서 복역 중 재소자들과 3.1독립운동 기념 철야만세를 주도하여 옥중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제창하였으며 6월 일본관헌 타도와 3일간의 철야 만세를 외치며 죽음으로 항거해 오면서 9차례의 단식투쟁을 하였다. 1933년 3월 16일 출옥하여 상해임시정부 밀파연락원과 비밀리에 활동해 오다가 일경의 심한 감시로 취업을 할 수 없자 1936년 동복으로 귀향 동독면 천변리에 정맥 타면공장을 설립하여 운영해오면서 독립운동자금을 제공하였고 1945년 해방 후 동복면 의회 부의장에 피선되어 면정에도 협력하였으며 1956년 천변리 공장을 처분하고 광주로 이거하였으며 성품이 의(義)롭고 온후하며 남달리 겸양하여 독립유공자임을 내세우지 않아서 뒤늦게 1982년 8월 15일 독립운동가로 지정 대통령표창을 받았고 1984년 고향인 동복에서 자랑스러운 동복면민의 상을 수상하였고 1986년 5월 29일 광주시 두암동 자택에서 81세를 일기로 별세하여 동복면 구암리 선영하에 안장하였고 1990년 12월 2일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으며 부인 연안명씨 명희 여사와의 사이에서 근성 해성 효성 정자 승자 수성을 두었으며 조카 장건을 후대(後代) 자로 지정하여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