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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귀주 는 화순(和順) 사람이다. 광주지역의 중심적 항일학생결사였던 성진회(醒進會)가 1929년 3월에 형식상 해체된 후에도 중동학생들의 활동은 각 학교단위로 계속되어졌다. 이때 광주사범에 재학중이던 그는 1929년 3월, 선배회원인 임종근(林鍾根)·김기주(金基柱) 등의 졸업에 즈음하여 동교 졸업생 및 재학생 회원 12명과 함께 당시 광주읍내 중국요리점 '연빈루'에 모여 졸업 후 항일운동의 방안에 관하여 협의하고 졸업생과 재학생간의 단결을 다짐하였다. 한편 광주학생은 조직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동년 6월에 "독서회중앙본부"를 조직하였는데 동본부는 조직적 활동을 위해 하부조직으로서 각 학교 단위로 독서회를 조직하기로 하였다. 그러한 계획에 따라 그는 동년 7월에 강달모(姜達模)·송동식(宋東植) 등 광주사범학교학생 15명과 함께 수피아여학교 뒷산에 모여 독서회조직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고 동년 9월, 광주형무소 뒷산에 다시 모여 광주사범독서회를 결성하였다. 동회는 전회원을 5개반으로 나누고 각반별로 연구활동을 하였는데 그는 이러한 독서회 활동을 통하여 항일의식을 고취하던 중,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만세시위 후 독서회운동으로 인하여 일경에 피체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광주사범학교에서 퇴학당하였다. 그는 모진 고문을 겪다가 1930년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