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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수(柳益秀) : 의병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주, 아버지는 유원형이다. 1870(고종 7) 지금의 경기도 안산시 부곡동 출생으로 3.1운동 당시에는 지금의 상록구 월피동(부루지)에 거주하고 있었다. 유익수는 3.1운동에 참여하였다.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1919년 3월 30일 능곡리의 윤병소, 와리의 홍순칠, 화정리의 김병권, 수암리의 이봉문, 산헌리의 윤동욱등과 함께 비석거리에서 인근 18개 동리 2,000여 명의 주민들을 인솔하고 선두에 서서 읍내의 향교, 면사무소, 보통학교등을 돌면서 태극기를 휘두르며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일본 경찰이 해산을 요구하며 총을 쏘려 하자 흥분한 군중들의 시위가 과격해지므로, 폭력의 자제를 호소하여 평화적 시위가 되도록 하였다. 유익수는 다음날에도 반월면 장날을 이용하여 주민 600여 명과 함꼐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곳에서도 시위가 과격해지자 "건물이나 기물은 우리 민족의 재산이므로 파손하지말자."라고 호소하여 평화적 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4월 5일 일본 경찰에 붙잡혀 같은 해 5월 2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과 소요로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항소하여 7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1년으로 감형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6년여를 병석에서 고생하시다가 1926년에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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