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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수는 경기도 시흥(始興) 사람으로, 1919년 3월 30일 시흥군 수암면 수암리(秀岩面 秀岩里)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 날 면내 18개 동리의 주민 2천여 명의 오전 10시에 비석거리(碑石洞)에 모여 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하였을 때, 그는 성포리(聲浦里) 이장이 인솔하는 시위행렬을 따라 비석거리에 도착하였다. 이 때 성포리 이장으로부터 평화적인 시위를 위하여 인솔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시위군중의 선두에 서서 지휘하며 읍내 도살장까지 행진했는데, 와리(瓦里)에 사는 홍순칠(洪淳七)로부터 태극기를 전해 받고 더욱 용기를 얻어, 해산을 명령하는 일경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계속 전진하였다. 읍내로 진입하여 경찰 주재소·공립 보통학교·면사무소·향교를 돌며 군중을 지휘하여 평화적으로 시위하였다. 이튿날에는 수원군 반월면(水原郡半月面) 장터로 나아가 6백여 명의 시위군중과 독립만세를 외치던 중, 그 곳 면서기를 만나서 전날 수암면의 평화적 시위에 대해 이야기하자, 면서기는 즉시 그에게 반월면의 시위도 평화적으로 전개하기 위하여 그 지휘를 부탁하였다. 이에 그는 시위군중의 선두에 서서 폭력을 사용하지 말도록 종용하며 독립만세운동을 지휘하다가 체포되어, 이 해 7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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