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page

21 朴 氏 新 羅 年 譜 아달라왕 능안에 묘좌(卯坐)에 장사하고 시호(諡號)를 신덕이라 올렸다. l 신라 제54대 경명왕기(景明王紀) 신라 제54대 경명왕은 신덕왕의 태자니 휘는 승영(昇英)이요 왕위에 계 신지 7년이다. 능은 아달라 왕능 안 묘좌다. 비는 석씨니 능은 서화산 자좌다. 원년 정축(丁丑)에 석씨를 봉하여 왕비를 삼고 아우 위응(魏膺) 으로 상대등 대아찬을 삼고 유염(裕廉)으로 시중을 삼다. 팔공자 를 봉 하 니 받분은 밀성대군 휘 언침이시고 다음분은 고양대군 휘 언성이시고 셋 째분은 속함대군 휘 언신이시고 넷째분은 죽성대군 휘 언립이시 고 다섯 째분은 사벌대군 휘 언차이시고 여섯째 분은 완산대군 휘 언화이시고 일 곱번째분은 강남대군 휘 언지이시고 여덟째분은 월성대군 휘 언의이시다. 2년(919년) 이길찬 현승(玄昇)이 반역을 꾀하거늘 참수(斬首)하다. 이해 에 왕건이 고려를 세우다. 4년 경진(庚辰) 4 월 에 고 려 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맺다. 10월에 견훤이 대량협과 구사(仇史) 두 고을을 함락(陷落)시키고 진례군(進禮郡)까지 침 입하니 왕이 아찬 김율(金律)을 고려에 보내 구원을 청하니 견훤이 듣고 물러갔다. 이때에 견훤이 자주 침입하므로 고려가 장수 박수경(朴守卿) 을 보내서 왕경을 수호하게 하였다. 5년 신사(辛巳) 정월에 김률을 고려에 사신 보내니 고려왕이 묻기를 신 라의 장륙상(丈六像)과 구층탑(九層塔)과 성대(聖帶)가 있는데 이것을 삼 보(三寶)라 하였는데 성대도 아직 있는가? 김률(金律)이 대답을 못하고 돌아와서 왕께 고하니 여러 신하에게 물어보아도 알지 못했는데 그때 황 용사의 구십여세 되는 늙은 중이 대답하기 를 “ 이 것 은 진 평 왕 께 서 쓰 시 덕 것 으 로 지 금 남 고 ( 南 庫 ) 에 수 장 ( 收 藏 ) 되 어 있으나 둘레가 심히 길어 서 보통 사람은 맬 수 없습니다.” 하였다. 2월에 말갈(靺鞨)의 별부에 달고(達姑)의 무리 백칠십인이 침 입하여 삭 정군(朔庭郡)을 경유 하는지라 고려장군(高麗將軍) 견권(堅權)이 쳐서 물 리치니 왕이 고려에 사신을 보내어 사례하시다. 8년 갑신(甲申) 8 월 에 왕 이 훙 ( 薨 )하시니 아우 위응(魏膺)이 왕위에 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