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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朴 氏 新 羅 年 譜 무사(無嗣)라고 한 것은 어진 사람이 없다 는 뜻이다. 나라 사람들이 탈 해의 손자 벌휴(伐休)를 세워 임금을 삼고 아달라왕을 국도 남쪽 15리 배일산 묘좌에 장사하다. 벌휴왕 석씨(昔氏)로부터 3세를 지내 김씨 미추왕(金氏 味鄒王)에게 전 하고 미추왕이 다시 석씨 유례왕(儒禮王)에게 전하여 2세를 지 내 고 다시 김씨 내물왕에게 전하니 김씨가 35세를 지내고 다시 박씨에게 전하여 신 덕왕(神德王)이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이다. l 신라 제53대 신덕왕기(神德王紀) 신라 제53대 신덕왕의 휘는 경휘(景暉)이고 예겸(乂謙)의 아들로 아달라 왕의 후손이다. 왕위에 계신지 5년이요 능은 아달라왕 능원내 묘좌이다. 비(妃)는 의성황후 김씨니 능은 영산 자좌이다. 원년 임신(壬申)에 아버 지를 선성왕(宣聖王)으로 어머니를 정화태 후 ( 貞 和 太 后 ) 로 추 존하고 비를 의성왕후(義成王后)로 봉하고 아들 승영(昇英)을 태자로 삼았다. 김씨의 효공왕이 훙(薨)하매 왕을 찬양하고 조회(朝會)하는 사람들이 모 두 신덕왕에게 와서 우리 임금 박씨는 아달라왕의 후손이라 하였으니 시 조왕의 쌓이고 쌓인 여경(餘慶)을 가히 증험하겠으며 아달라왕 께서도 자손이 있음을 이에 증거할 수 있도다. 이해에 동해 용왕이 옥적(玉笛)을 올리니 황옥(黃玉)과 청옥(靑玉)이다. 길이가 일척구촌(一尺九寸)이며 소리가 맑고 명랑하여 대대로 간직해온 보배다. 고려왕이 구경하고져 하여 사람을 보내서 가져갔는데 조령(鳥 嶺)을 지나서부터 불어도 소리가 나지 않으므로 고려왕이 신령한 물건임 을 알고 돌려 보내었다. (지금 경주 악부(樂府)에 보관하고 있다.) 황제(皇帝)가 풍류를 베풀며 고기와 용이 나와서 듣고 제순(帝舜)이 소 (韶)를 연주하니 봉황(鳳凰)이 와서 깃들었다 하는데 우리 신덕왕이 등 극하매 용왕의 옥적이 지금도 오히려 조령 서쪽에서는 소리를 내지 않으 리 신의 신령스로운 덕이 더욱 나타남이라 하겠다. 4년 을해(乙亥) 걸단(揭丹)에 사자(使者)를 보내다 6년 정축(丁丑) 왕이 훙(薨)하시매 태자 승영이 왕위에 올라 신덕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