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뱚2017년 11월 30일 (음 10월 13일) 목요일(신라기원 2074년) 전화:053-588-7300 제131호 12면(월간)뱚 인체파동원리 http://blog.daum.net/tongnamu79 손을 얹으면 아픈 곳이 낫는 보석체험, 추풍령 통나무연수원 븡펜션. 문의:010-2336-7852 박 정 희 전 대 통 령 서 거 3 8 주 기 추 모 행 사가 지난 달 26일 박씨대종친회 부산본 부(회장 진국)를 비롯 국립현충원, 구미 생가,문경에서각각열렸다. 서거이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추모행 사를 지내오던 부산본부는 초량동 본부 회관에서 100여명의 종원이 참례한 가운 데 오전11시 고인의 업적과 약력낭독 후, 진선(鎭善) 부회장의 집례로 재생(在生) 고문, 종만(鍾滿) 부회장, 주석(周錫) 지 부장 순으로 헌작하고 영호(泳皓) 이사 의 독축으로 40여분에 걸쳐 엄숙 봉행되 었다. 이날 초헌관으로 헌작한 재생 고문은 9 8세(庚申生)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박 전 대통령의 큰 업적을 잊을 수 없어 초헌관 으로 헌작할 수 있도록 집행부에 간청하 였다며, 일제 강점기와 보릿고개를 겪었 던 사람으로 박 대통령의 타고난 업적은 말로서는 형용할 수 없다며 고인에 대한 기억을 되살렸고, 진국 회장은 기아를 물 리치고 산업근대화를 이끌어 온 업적을 기리는 추모제에 참여해준 종원 여러분 과 시민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하고 내 년에는 더 성대하게 봉행할 것이라며 잊 지않고참여해줄것을당부했다. 부산본부는 그동안 추도식을 거행하다 지난 2015년부터 추모제로 행사방식을 바꾸고 제물을 정성스럽게 준비하여 삼 헌관이 헌작하는 추모제를 봉행하고 있 어 이날 제향에는 김해에 거주하는 의규 (義圭) 前 신덕왕릉 참봉, 용부(庸夫) 前 경애왕릉참봉, 삼석 부산동구청장 등 이 참석 고인의 업적을 기리고, 추모제 이후 에는 평소 즐겨 드셨던 막걸리로 음복하 며 생전에 이루어놓은 업적이 정권이 바 뀌면서 퇴색되고 폄훼하고 있어 안타까 움을드러냈다. 한편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대통령 생 가에는 예년과 비슷한 500여명이 모인가 운데 고인의 생전 육성 청취, 진혼시 낭 송,묵념,참석자헌화순으로추도행사가 진행됐다. 추도식의 초헌관은 남유진 구 미시장, 아헌관 김익수 구미시의회의장, 종헌관은 전병억 생가보존회장이 각각 맡았다. 남 시장은 추도사에서 “박정희 전 대통 령 의 수 많 은 업 적 을 볼 때 많 은 국 민 이 그 의 정신을 기려야 한다”며 “구미가 국가 의 총체적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데 앞장 설것을영전에약속드린다”고말했다. 박 전 대 통 령 이 1 9 3 7 년 부 터 4 년 간 문 경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하숙한 문경 시 문경읍 청운각에서도 당시 제자와 시 민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이 열렸다. 국립현충원에서 가진 추도식은 정재호 추도위원장의 개식사, 정홍원 기념사업 추진위원장·장경순 구국국가원로회 의 장의 추도사와 박정희 전 대통령 육성 녹 음 청취,추도가 연주·합창,조총 발사,묵 념,헌화·분향순으로진행됐다. 추도사에서 정홍원 기념사업추진위원 회 위원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대통령 님께서는 6븡25 참화가 아물지 않은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에 대한민국의 영 도를 맡으셨다”며, “축적된 민족자본과 매장된 지하자원도 없는 이 땅에서 ‘사람 의 가치’를 발견했다”며 박 전 대통령의 지도력에대해말했다. 국립현충원에서는 아침 일찍부터 태극 기를 앞세우고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 들도 추도식에 참석, 행사장 곳곳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하루빨리 석방해야 한 다 .”면 서 목 소 리 를 높 였 다 . 한편 부산본부는 지난 14일 부산벡스 코에서 개최된 박정희 대통령 탄신 100주 년 기념식에 박진국 회장을 비롯한 임원 진이 대거 참석 박 前대통령의 정신을 기 렸다. /박만순(연제구지부),박찬훈(서구지부)명예기자 박정희前대통령서거38주기추모제 봉행 기아를물리치고산업근대화를이끈업적기려 부산본부 재생 고문이 헌작하며 초헌례를 올리 고있다. 구미 생가에서 남유진 구미시장이 헌작하고 있 다. 박팽년 선생 탄신 600주년을 기념하 기 위 해 순 천 박 씨 충정공파 종친회, (사)육신사보존회, 달성군, 대구향교 공동주관으로 지난 10일 대구향교 대 강 당 에 서 박 연 탁 박약회 이사장, 박 태규 박씨대구연합 회장, 손영수 대구향교 전교, 예정수 성균관 유도회장과 지역 유림지도자, 종중원, 시민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 었다. 이번 학술대회는 ‘박팽년을 통해서 본 조선유학의 도학과 절 의정신’,‘박팽년의 문학적 의의’,‘박팽년과 유교문화 경관’,‘스 토리텔링의 보고 묘골 육신사’ 등의 주제로 홍원식박사(대구 계명대 교수), 윤재완 박사(단국대 교수), 이한방 박사(경북대 연구교수), 송은석 선생(대구 문화관광 해설사)의 각각 주제발 표를 통해 취금헌 박팽년 선생의 절의정신과 문학,그리고 육신 사가있는묘골을재조명했다. 학술발표회에 앞서 박도규 충정공파 종친회장은 뷺이번 학술 대회를 통해 우리 지역의 선비문화를 시민과 젊은 세대에 널리 알려 현대화, 대중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뷻고 하였으며, 박성규육신사보존회장은최근면전에서는충성을다하고돌아 서서는 배신을 밥 먹듯 하는 시대를 돌아보면서 선조이신 충정 공의 절의정신은 새삼 우리에게 삶의 기본을 가르쳐 주신 듯 하 다며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 측근들의 행태를 에둘러 표현하고 우리 후손들은 선조의 유훈을 받들어 임진왜란에는 의병을 일 으켜 나라를 구하고 선현들의 뜻을 기리기위해서는 육신사를 건립하였다며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선조님의 뜻을 이어갈 것 이라고말했다. 주제발표에 나선 홍원식 박사는 충절이 전근대적 유교의 가 치 관념인 것은 분명하다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육신 이 단순히 충절지신이었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는 것보다 전 근대적 유교의 충절이 오늘날 어떠한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를 새겨보는데있다고생각한다.며마무리했다. 윤재환 박사는 ‘박팽년의 문학적의의’에서 지금까지 취금헌 에 대한 논의는 대부분 단종 복위운동으로 죽임을 당한 그의 절 의에 주목하여 이루어졌다. 그러는 그는 18년간 집현전에서 학 사로 활동했던 당대의 대표적인 문인이자 학자였고, 經術(경 술)과 文章(문장)그리고 筆法(필법)이 모두 뛰어나 集大成(집 대성)이라는 칭호를 받은 한 시대의 藝人(예인)이었다고 평가 했다. 충정공 후손들의 세거지인 묘골은 많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노비가 낳은 딸과 바꿔치기 해 극적으로 길러져 대를 이은 ‘박 비(박일산)’보물 태고정 편액으로 걸린 ‘안평대군이 쓴 일시루 (一是樓)’, 꿈에 나타난 사육신의 현몽 등 육신사 이야기는 50 여 가지가 전해지고, 사육신 기념관과 고택이 즐비해 자녀들과 함께찾아가볼만한명소로자리한다. 한편 지난 12일에는 사육신을 기리는 제향이 묘골의 육신사 에서김교언선산김씨문간공파종친회장의집례로김문오달성 군수, 이경락 진성이씨대종회장, 성한기 창녕성씨 대종회장이 각각 초헌과 아헌, 종헌관으로 헌작하고 박해율 박씨대구연합 회 총무의 독축으로 六臣(육신)의 후손들과 유림,관광객 등 30 0여명이참례한가운데엄숙봉행되었다. /자료제공박종우상무(족보문집전문업체대보사) 충정공 박 팽년선생 탄신 600주년 기념 학술대회 대구 에서 열려 홍원식 대구계명대 교수가 ‘박팽년을 통해서 본 조선유학의 도학과 절의정 신’의주제발표를하고있다. 븮취금헌박팽년선생의절의정신과문학,그리고묘골븯 박도규 회장(左)과 박성규 육신사 보존회장이 인 사말 을 하 고 있다. 사육신의절의정신을기리기위해지난 12일위패가봉안된대구달성군하 빈면묘골의육신사에서후손과 지역유림관광객등300여명의참례한 가운 데엄숙봉행되었다.사진은박해율 축관의독축장면. 조선 명종, 선조 때의 문신으로 이황의 학풍을 후학에게 전달하는데 힘을 기울 여 퇴 계 학 파 형 성 에 크 게 기 여 한 소 고 박승임(嘯皐 朴承任, 1517년-1586년) 선 생 탄신 500주년을 맞아 선생의 학문과 삶을 되돌아 보고 업적을 기리기 위한 기 념식 및학술대회,시비제막식이지난15 일 영주시 관내 유림과 각 성씨문중의 종 손과 종원, 반남 박씨 종친 등 6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주시 그랜드컨벤션웨딩 5층에서 1부 기념식과 2부 학술대회에 이 어 오후에는 장소를 한정마을 소고대 아 래로옮겨시비제막식을가졌다. 이날 기념식에서 기획예산처장관을 역 임하고 현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 사장인 김병일 기념사업회장은 선생은 퇴계선생의 문하에서 고제(高弟)로서 학 문과 도덕을 이루시어 영남의 대학자가 되셨을 뿐만 아니라 나라에서도 손꼽히 는 문장가로 자리하셨으며, 46년간을 거 의 빈틈없이 내외직의 벼슬생활을 하시 면서 큰 업적을 남긴 분으로 이제 기념사 업회에서는 선생의 현창사업을 추진하며 오늘 학술대회를 갖게 되었다며 선생의 업적이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노력을 다 짐한다고말했다. 지난 2월 기념사업회 창립으로 현창사 업이 한창인 가운데 4월에 추모고유제에 이어 가진 학술대회는 김병일 원장의 소 고 선생의 생애와 교훈의 주제발표에 이 어 강구율 동양대학교 교수, 김학수 한국 학중앙연구원 편찬실장, 강성준 문경대 학교 교수가 발표자로 나서 ‘소고 박승임 의 사관과 정치적 경륜의 실체’, ‘강학과 저술’, ‘시문학’의 주제발표가 이어진 가 운데 영남의 진정한 대학자로 백성을 위 하는 청백리의 표상이자 참된 선비인 선 생의삶을재조명했다. 소고 선생은 1517년 11월 19일 영주시 에서 출생해 22세에 퇴계 선생의 문하에 들어가 24세에 문과급제하고 28세에 호 당(湖堂)에 여러 명사와 함께 선발되어 사가독서(賜暇讀書)해 학문 연구에 전념 했다. 이후 목민관으로 나아가 풍기군수, 여주목사, 경주부윤, 춘천부사, 황해도 관찰사 등을 역임하며 선정을 펼쳤으며 이조좌랑, 동부승지, 도승지, 대사간 등 의 중앙요직을 거치면서 국사에 크게 기 여했다. 저서로는 강목심법, 성리유선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특히, 목민관으로서 세금을 낮추고 진휼을 실시해 민폐를 제 거하는 등 민생의 안정과 교화의 보급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20년 가까이 목민 관을 역임하였지만 고향에는 번듯한 기 와 집 한 채 없 는 청 빈 한 삶 을 살 아 후 손 에 게긍지와자부심을심어주고있다. 후일 학사(鶴沙) 김응조(金應祖, 1587 ~1667) 선생은 ‘훌륭한 스승은 세대마다 나는 것이 아니고 훌륭한 제자도 항상 있 는 것이 아니다. (賢師不世出 賢 弟子不常有)’라 고 선생을 칭송 했다. 선생의 저작으 로는 ‘성리유선 (性理類選), 공 문 심 법 유 취 ( 孔 門心法類聚), 강 목 심 법 ( 綱 目 心 法 ) , 사 례 변 해 (四禮辨解), 소 고문집(嘯皐文集) 등이 있으며, 구강서 원에배향되었다. 한편 이날 제막된 시비는 선생의 즉흥 시를 돌에 새긴 것으로 다음과 같다. 시비가 세워진 소고대는 선생이 평소 에 자주 거닐던 곳인 옛하한정 터에다 그 를추모하기위하여세운대(臺)이다. 소고박승임선생탄신500주년기념학술대회및시 비제막식 목민관으로애민정신펼치고많은저술남겨븣지역유림과후손등600여명몰려 소고선생학술대회에서김병일회장이 기조발표를하고있다. 소고대아래세워진시비가제막을앞두고있다. 소고선생시비(즉흥시) 광 양 현 감 으 로 선정을 베풀었던 인재 박세후 선 생의 영정이 위 패가 봉안된 봉 양사에 봉안되어 광양의 인물로 재 평가받고 있 다. 지난 8일 신재 최산두 선생과 함께 가진 봉안 제에는 이를 반 영하듯 지역 유림은 물론 인근 순천 고흥 지역 유림과 주민 후손 등 300여명이 운 집 선생의 높은 애민정신과 학덕을 계승 한 가운데 기념식에서 광양시장을 대신 한 신현숙 부시장은 선생의 선정은 지금 이시대 행정을 이끌어가는 우리들의 사 표가 되었다며 칭송하고 선생의 정신을 계승 발전하는데 노력을 다짐한다고 말 했다. 박인기 상주박씨 판서공파 종친회장은 “후손들이 불효(不孝) 불민(不敏)하여 아직 사우에 영정을 모시지 못하여 죄스 럽고 안타까웠는데 금년에 인재공 후손 들이 정성을 모아 영정을 이루어 재실에 봉안하게 되어 만시지탄(晩時之歎)이 있 지만 후손된 자로서 감개가 무향하옵니 다. 영령께옵서는 후손들의 정성을 어여 삐 여기시어 기뻐해 주시옵고 그리고 항 상 저희 후손들을 보살펴 영령께옵서도 피안(彼岸)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옵서 서”라며 회한(悔恨)과 정성의 추모사로 선조님을 기렸다. 이어 인재공의 덕망과 공적을 잊지 않고 이를 기리기 위해 오랜 세월동안 배향하여 주신 광양유림과 매 년 향사를 주관해 주신 광양향교에 존경 과감사의인사를전했다. 인재공은 군자감정을 지낸 사벌국왕의 16세 휘 사화(士華)와 영월신씨의 셋째 아들로, 그의 장형 휘 세훈(世勳)은 도학 자로 남양 안곡서원에 배향되었고, 중형 인 도원재 세희(道源齋 世熹)는 별시문 과 장원급제한 후 승정원 좌승지, 사헌부 대사헌, 홍문관 대제학을 지낸 기묘명현 으로 남양 안곡서원과 순천 이천서원에 배향된 명문가 출신으로 1493년 경기도 남양에서태어났다. 1516년 진사, 1519년(26세)에 문과급 제 하였으나 그해 기묘사화 때 중형 도원 재공과 함께 조광조 문인인 사림파 숙청 대상이되어기묘명현이되었다. 1527년 홍문관 박사,성균관 전적,사헌 부 감찰 등을 거쳐 1528년(중종28) 광양 현감으로 부임하여 학문을 장려하고 사 마소(司馬所)를 설치하여 유학의 진흥에 진력하였으며, 성 밖에 유당공원(柳塘公 園)을 조성하여 주민들에게 안락한 휴식 과 사유의 공간을 제공하고, 왜적과 해풍 의 피해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하여 숲 거 리 에 수 림 을 조 상 하 는 등 선 정 을 베 푸신 청백리(淸白吏)로 훗날까지 향민들 의칭송이자자하였다. 1540년 밀양부사에 부임하여서는 영남 루와 동쪽 전각인 능파각을 중수하는데 치적을 세웠으며, 이후 동부승지가 되어 이듬해 하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5 6세에 강원도 감찰사 및 병마수군절도사 가 되어 관동지방에 선정을 베풀었고, 사 후에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좌의정 낙성부원군(洛城府院君)으로 추증되었 으며, 광양 봉양사에 신재 최산두 선생과 함께배향되었다. /박상섭편집국장(parkss1012@hanmail.net) 전남광양봉양사인재박세후선생영정 봉안 광양현감으로선정베풀어후세의귀감이되어븣신재최산두선생과함께봉안 영정봉안제에참석한 후손들이 한자리에모였다. 인재박세후선생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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