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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편(昌原市編) 운암서원(雲嚴書院) 口밀성박시 口소재 ÄI : 창원시 의창구 사화동 303번지 昌原 沙火의 密城朴民는 貴祖이 신 譯 彦挑의 長계 銀山府院君 譯 永均, 그 長子 忠薦公 松隱 譯 翊, 그 次子 忍堂公 諸 昭로 繼代를 이었다. 그 長子 司憲府藍察 證 굶 審께서 처음 창원에 입향하여 沙 火에 世居하였다. 16세 而慶과 達城 孫~ 슬하에 身潤이 태어났으니 天票이 탁월하 고 학문과 인품이 높고 효성이 지 극하여 出天之孝子라 하였다. 마을 뒤 등명산에서 실을 열고 그 곳을 愚감이라 이름하여 자신의 호로 삼았다. 학문과 효행으로 영남에 이름이 나고 칭송이 높았으나 38세에 후하니 모두 안타까워하였다. 輔宗28(1702)년에 獅內 士林이 중지를 모아 조정에 상소하니 호조좌랑에 추증하고 향현소인 운암사가 세워졌다. 憲宗 甲辰(1844)에 書院으로 승격되었으나 고종때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이에 유림들이 f需찢를 모아 매년 우모하다가 E표(1949)년부터 다 시 釋菜를 奉行하였다. 辛B(2001)년 창원시도시개발로 마을이 이주하게 되자 門中에서 논의하여 그 자리에 書院을 복원하고 雲嚴書院이라 하였다. 건물은 敬賢洞, 別蘭, 典피E聽, 景德門, 講堂, 動學堂, 動善堂, 靖安門과 관리 사 등을 모두 갖추어 경남 제일의 규모라 할만하다. 운암서원에는 고려말 팔 은(八隱)의 한 분인 밀성인 송은(松隱) 박익(朴翊)선생, 인당(忍堂) 박소(朴昭) 선생, 임진란 선무원종공신이신 의와공(義홉公) 박홍정(朴弘貞), 우독(愚용) 박신윤(朴身潤)선생을 봉안하고 매년 향사를 올리고 있다. 우곡선생의 효심은 하늘을 감동시켜 물길을 갈랐는데 그 이야기를 담은 ‘조갈 내의 전셜’은 지금 도 사람들에게 효행의 본보기가 된다. 운암서원은 창원시에서 소유하면서 宗 中에서 관리하고 사용하는 방법으로 영원불변하게 보존하게끔 제도화되었다. 본 沙火문중은 자손이 번성하여 경향 각처에 산재하고 있고 정치, 경제, 학 계 등등에 참여하는 자손이 많으나 번거로워 기록치 않는다. 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