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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갑천군면(俠川검6編) 필요한 물건을 보내 렴問했으며 춤고 배고픈 過客이 있으면 배불리 먹이고 며칠씩이나 재워 보내다 보니 집안에는 항상 손님이 그득하여 미-치 옛날 한 나라 때 손님 접대로 유명한 孔 北海 敵과 같은 風度가 있었다. 늘 일찍이 공 부하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여겨 마을에 서당을 짓고 스승을 맞아 子桂과 고 을에 재주 있는 사람을 가르쳐 학문이 성취하기를 기대했고, 고을 사람을 대 함에 신의가 두터웠다. 후인들이 옛 은혜를 잊지 못하여, 서로 의논하고 비석 을 세워 그 공적을 드러내었다. 또 많은 선비들이 추모계를 모으니 찢1뼈에 이 름을 올린 사람이 200명이나 되었다. 다시 遺塊牌를 세우고, 이어 집을 한 채 짓고 農山顆라 縣板을 걸고 追暴하니 은혜와 덕이 있는 사람을 감동시킴 과 항상 변치 않는 인간의 本性이 없어지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공은 1869년에 나서 1947년에 別世하니 享年 79세였다. 기적비 왼쪽에 있는 송덕 비에는 다음과 같은 섯귀가 적혀 있다. 醒演健本 動努當富 感溫如一 浮浮旅裝 接應難分 꿈圖堅立 초 이 위 본 곤 노 당 부 강 온 여 일 부 명 여 장 겁 웅 난 분 영 도 수 립 율정 박희 선송덕 비 (票亨朴熙善頭、德、牌) 醒、演偶本 : 農事를 根本으로 動努當富 : 부지런히 힘써 富者되었네 感溫如一 : 평생 남을 도우며 浮뿜旅裝 : 貴購을 가리지 아니했네 接應難分 : 지나가는 길손들이 커圖堅立 : 정성 모아 이 비를 세웠네. 68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