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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ÒH군면(南海폐編) 박공 송덕 비 (朴公 領德碼) 박재호(朴在浩) : 자는 성관(聖寬) 호는 사 송o四松) 규정공 21세손 천품이 순후하고 인자하여 어릴 때부터 남 들과 다투지 않고 친구끼리 어려운 일이 있 을 때는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는 일에 앞장 서니 이웃사람들이 성자처럼 너그러운 사람 이라고 극찬하였으며 자(字)를 성관(聖寬)이 라고 부른 연유도 여기에 있다. 옛 성현의 말씀을 읽고 되씹을수록 더욱 자선(孫善)의 기상은 드높아져 굶주리거나 헐벗은 사람을 보기만 하면 먹던 밥도 나누어 주고 입고 있 던 옷도 벗어주는 사람이었다. 개방되어 있 는 사랑방에는 먹고 자기위한 과객이나 걸인 들이 항상 초만원이었다. 公의 자비심은 가히 천세에 빛날 성스러운 일이었 다. 지성은 식객들의 심금을 울려 그들에게 자립의지를 가지게 하였고 한푼 두푼 모은 성금으로 보은의 송되비를 세우기에 이르렀다. 송덕비엔 자인공검 (孫仁共險) 애인하사(愛人下士) 천생아공(天生我公) 맹상지풍(굶홉之風) ‘자애 스럽고 인자하고 만사에 검소하면서도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탐내지 않던 그 의 행적은 맹상군의 풍도에 비길 수 있고’ 박시제중(博施濟聚) 행로송사(行路頭離) 석씨지공 (釋民之功) 승덕무궁(承德 無罷)‘세상 사람들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 구제의 손길을 뻗친 그의 공적 은 부처님의 자비에 견줄만한 일로서 하늘이 낳은 의인과 보은의 충정이 얽 힌 미담은 백세에 길이 빛날 것이다’라고 새겨진 송덕비를 서기 1937년 병자 (內子)년 식객들이 남해군 설천면 고사마을 입구에 세워 길손들의 걸음을 멈 추게 하고 있다. 477 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