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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경남문화유적록 참봉공 인규 공적 비 (參奉公仁奎功題碼) 口 밀성박씨 口 소재지 . 固城那 會華面 堂項里 參奉 號 펄佑 朴公 譯 仁鍾 字仁奎 는 密陽朴民 大族의 後孫으로 三千浦 東林洞에서 出生하여 本面 堂項으로 移居 成長하였다. 公은 天性이 仁l享敎 陸 孝爛忠信하여 예순의 老搬에서도 母夫人의 엄한 매를 거역 없이 달게 받고 집 안의 和陸과 고장의 發展을 위하여 進力하였다. 일찍이 祖國이 悲 運에 處해 있을 때 뜻을 품고 玄海‘離 을 건너 結織事業家로 활약 中 祖國 光復과 더불어 歸國하여 建國 初期의 有能한 人材가 切實히 要求될 때 公 은 이 고장 會華面 議會의 初代 二代 三代의 三選議員을 重任되 어 議會議 長과 固城郵參事會 議長에 推載되어 서 地域社會 發展과 民生福利에 이바 지한 功이 至大하였다. 固城都敎育委 員會 副議長으로 在任 中 獅士中高等 學校 쩔學金을 支給하여 育英事業에 誠熱을 바쳤다. 당시에 脫路가 많던 運輸 및 建設業을 創設하여 大昌建設 社長과 大韓建設協會 慶尙南道支部長 등 重職을 歷任하여 國土建設에 心血을 願注하였다. 新羅景哀王|찢의 參奉을 受任하여 祖上뿔拜와 同族和睡에 盡心喝力하였다. 特히 會華面老人會를 위하여 老人會館 建立은 물론 與樂施設과 會館運營費 등 塵次에 많은 揮財를 喜擔하여 老人福피!l: 增進에 誠力을 다하니 그 孝佛心 을 미루어서 人之者에 미침이로다. 그 賢폐 四兄弟인데 昌弘 昌學 我完 我用 또한 敬老思想、이 透微하고 物心兩面으로 돕고 도우니 世人의 讀美하는바 큼 이라. 이에 老人會員들이 微誠을 모아 公의 仁l享한 性品과 律律한 人情味와 그리고 燦然한 業績을 陣面애 새겨 永世에 길이 傳하려한다. 西紀 一九A四年 十月 二十五 日 會華老人會 會員一同 세움 .c 4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