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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ìã L 남문화유적록 조정 에 알려져 정려되고 벼슬이 인산군수에 이르다 묘. 묘비 - (이방 석리) • 박 운(朴굽) 年 十四 其父寫 虎所禮 동持小쏟 與其弟八世兒 동山追至 三十步 號天大哭 虎乃棄之공負園굽山 執쏟以隨事聞雄聞在高岩 본관 밀양 성종때 사람. 충민공 세균의 6대손 十四세의 어린나이에 아버지 를 따라 나무를 하는데 대호가 아비를 물고 가므로 八세되는 동생 운산과 같 이 조그만 도끼를 가지고 三十여보를 쫓아가면서 하늘을 불러 크게 우니 이 에 범이 (감격하였든지) 물었던 것을 버리고 물러갔다. 운은 시체를 거두어 업고 운산은 도끼를 들고 집으로 돌아와 예장하였다. 이 일이 조정에 보고되 자 정문을 세워 표창하고 삼강행실록에 실었다. 정문은 고암에 있다. 묘. 묘비 - (고암 원촌) • 박창지(朴昌社) 縣藍 文星텀 性至孝 通早孤 日 省幕 事母志體暴養 T憂盧훌훌 三年 隱居究經史 본관 밀양 현감 문성의 후손으로 자는 태원(泰元) 호는 수봉(壽奉)본성이 효성스러웠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어 애통하며 매일 성묘하였으며 어머니를 즐겁고 편안하게 모셨으며 상을 당함에 여묘에서 3년을 살았다. 경북 구지에 서 대합 매탄으로 이거한 입향조로 은거하며 경사를 연구했다. 동지중주부사 연고지 - (대합 매탄) • 박선복(朴仙福, 현종 갑진 1664 - 숙종 무선 1728) 否山 世均 尼 號 慢별f; 薦志力學 性至孝 親喪盧幕 罵 除職不應 藥室딩城山下以萬終暴 본관 밀양 행산 세균의 후손으로 호는 성헌이다. 독실한 뜻으로 열심히 공 부했으며 천성으로 효성이 지극하였다. 친상을 당하여 여묘에서 예를 다하였 • • 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