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page

창녕군떤(昌寧都編) 하면서 세상에서 기죄(其罪)를 용서받기 어렵다고 자책하고 성산면(城山面) 방리(芳里) 비치산(飛雄山) 갚은 숲속 굴속에 몸을 숨겨 한(恨) 맺힌 날을 마 감했다. 그래서 굴 암벽에 심회(心懷)를 시(詩)를 지어 새겼으니 日 千里從軍 敗夏山 (천리길을 종군하여 화왕산 전란에서 패하였으니) 며頭空望五雲間 (머리를 돌려 텅빈 구름사이(임금이 계신 먼곳)을 바라본다) 歲身怪訊亡君罪 (임금에 불충한 죄를 잊어버리고 몸을 숨긴 내가 부끄럽다) 大罵龍灣不?聞 (대궐에 계신 임금님의 居處消息을 엿들을 시간도 없구나) @ 항일 운동(抗日 運動) • 박재수(朴在秀, 고종 갑오 1894 - 임진 1952) 본관 밀양 대지면 창산 리 출신으로 1928년 기독선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五月 만주 봉천 조선독 립 운동 단체인 결사정의부에 가입 독립운동을 하다가 1929년 일본경찰에 체 포되어 七年형의 옥고를 치뤘다. 2001년 8월 15일에 독립유공자로 건 국 훈장 애족장을 수여 @孝烈錄 1) 孝子 • 박근인(朴近仁) 成均進士 寫父母盧훌 六年事 聞族聞 聞在昌樂 성균진사이며 부모상을 당하여 6년동안 여묘에 살며 지성을 다하니 이 일 이 조정에 알려져 영락 8년(태종 10년 경인 1410)에 정문을 세웠다. 정려는 창락에 있다. • 박 주(朴 뿜 명종 병오 1546 - 선조 1604) 寫父母盧훌 三年事 聞族聞 官至憐山部守 본관 밀성 호 모와(幕홉) 부모상을 당하여 3년 동안 여묘에 사니 이 일이 41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