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page

경매왕릉(景哀王陸) <사적 제 222호〉 지 쳐들어와서 자력으로는 방어할만한 국력이 없기 때문에 고려에 위급함을 알리시어 고려가 공훤 등으로 1만여명의 군사를 구원병으로 보내어 왔으나 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견훤이 이미 쳐들어왔다. 왕께서는 왕비와 황급히 이궁 에 가서 숨었다가 발각되시어 견훤의 강압으로 자진케 하시어 돌아가셨다. 왕 비와 비빈과 왕제 효렴과 대신들을 납치 또는 피살되었으며 궁중에 있는 보 물과 군기는 모두 약탈을 당하였다. 경애왕이 돌아가심에 이때에 다행히 생존하신 경애왕의 외종사촌 아우되시 는 김부(金博)를 왕위에 오르게 하시니 이분이 곧 신라의 마지막 임금이신 김 씨 경순왕(敬順王)이시다. 경애왕릉은 삼릉(三陸)의 좌록묘좌이다. 이로써 신라 천년의 왕업은 오로지 시조대왕 박혁거세께서 건국의 기초를 굳건히 하시었기 때문이며 3대 유리왕께서 부왕(父王)이신 남해왕의 유명(遺 命)에 따라 석탈해에게 왕위를 전하셔서 박, 석, 김 삼성(三姓)이 서로 전위 (傳位)하는 미덕이 시작되었다. 우리 박씨는 신라왕조 전기(前期)에 7왕, 후기(後期)에 3왕 합하여 10왕으 로 연년은 233년이다. 석(音)씨가 8왕으로 172년이며 김씨가 38왕으로 587 년이라 합하여 신라는 56왕 992년의 역년이다. 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