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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J안시 편(梁山市樞) 않고 돌아가므로 드디어 三年상(喪)을 마치게 되었어니 정여(雄聞)와 비석(牌 石)이 있고 北門外에 거(居)하였다. (여지승람(與地勝魔)) 박 승 장 (朴 承 章) 역사(繹史)였으나 그 父母를 효성(孝誠)으로 섬겼다. ‘후지(後誌)’ 友愛兄弟 한 고(故)로 本道에서 장문(狀聞)하여 特히 복호(復戶)를 내리고 또 그 마을에 사(洞)를 세워 春秋로 향사(享피E)하였다 (군지(那誌)) 박 세 갑 (朴 世 甲) 字는 元一이요 號는 죽암(竹魔)이며, 밀양인(密陽人)이다 母病에 지성(至誠) 으로 시탕(待場)하여 잠시도 곁을 떠난 적이 없고, 병중(病中)에도 모지(母志) 를 즐겁게 하는데 힘쓰며 百方으로 良藥을 求하여 8年동안 看病하였다 (군 지(都 誌)) 圍行 (烈女 孝歸 및 出聚한 歸行) 박 소 사 (朴 집 史) 통정대부(通情大夫) 金 시오(時嗚)의 쫓였다. 평 소(平素)부터 구고(퉁명站)를 섬김에 효성(孝誠)이 지극(至極)하였는데, 기구(其勇)가 버섯을 자시고자 하므 로 朴 과부(검史)는 求得하기가 어려우므로 正히 애타게 여기고 있던 중 마침 後園에 가서 고상목(古쫓木)에 버섯이 나 있는 것을 보고 반갑게 따 와서 드 렸더니 이 뒤로부터는 따면 또다시 돋아나고 하여 종신(終身)토록 공제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기수(其뿔)가 (졸)한 後에는 돋아나지 않더니 대소상시(大小 神時)에는 다시 돋아나서 제수(聚需)에 바치게 되었으므로 마을사람들이 모두 이르기를 ‘효성(孝誠)이 감천(感天)한 소치(所致)라’하였다. [군지(那誌)] 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