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앓 'â l 냥문화유적 록 午) (1738년 英祖 14년)年에 國王은 예조좌랑(禮暫住郞) 朴 창조(昌朝)를 보 내어 후한 知中樞府事 朴 정빈(廷홉)의 영전(靈前)에 치제(致쫓)하였다. 오직 영(靈)은 대나무로 만든 화살에 미명(美名)을 독점(獨러)하여 화살과 활이 전업(專業)이었도다. 언어(言語)는 진실성(員實性)이 있고 자태(쫓態)는 웅장하고 장하였으며 람전산(藍 田山)에서 玉石을 취(取)하니 少年에 揚名하였 고 새로 休息하다가 말 안장에 의지(依支)하니 노경(老境)에도 오직 장건(밤 健)하였도다. 中外에 시험(倚險)을 거치니 그 업적(業績)이 현저(顯著)하고 사 진(四鎭)에서 오랑캐를 다스리니 三뭄에 혜택(惠、澤)을 입혔도다. 또한 앞서 해 변(海邊)을 방어(防獲)하매 군병(軍兵)을 다스림이 克히 엄정(嚴正)하였고 기 상(홈賞)이 오르고 地位가 높이 열려 총애(罷愛)로써 관등(官等)이 올랐으며 은총(恩龍)으로 기사(홈社)에 미 쳤으니 正二品의 금띠가 벚나도다. 백발(白髮)이 늙은 머리털은 우리 부상(용쫓)(東方)의 고을을 즐겁게 하였도 다. 王辰(古甲子에서는 ‘辰을 집서(執徐)’라 함)年에 등제(登弟)하여 구갑(舊 甲)이 중회(重며)하였고 어사화(個l陽花)가 다시 내렸으며 은혜(恩惠)의 하사물 (下陽物)이 문득 넉넉하니 오직 년치 (年屬)와 관작(官뽑)의 덕 (德)으로 복(福)을 누림 이 이 미 편 안(便安)하 니 밤과 낮이 상리(常理)로 같도다. 연회(훌會)에서 돕(互器)를 두드리니 무엇 을 슬퍼하랴. 경 (9맑)의 순의(醒歸、)함을 생각(生覺)하니 그 용기(勇氣)가 바른 것만이 아니었도다. 이제 헛되게 마음에 얽힌 것이 모두 흩어져서 없어 졌으니 끝까지 등용(登用)하지 못한 것이 애석(愛惜)하며 재야(在野)에 현인(賢人)이 많았음을 회상(며想)해보니 나의 어두운 생각이 더하였음을 생각하는 도다. 예관(禮官)으로 하여금 치제(致聚)케 하노니 부디 흠체(敏7)하라 (舊 誌) 박 창 (朴 陽) 친상(親喪)을 當하여 심곡간(深삽間)에 여묘(盧基)를 마련하고 밤낮으로 애 통(哀'1動)하니 때마침 왜적(慶戰) 三人이 칼을 들고 와서 그 까닭을 묻기에 창 (陽)이 실정(實情)으로서 대답(對答)하니 적(戰)이 감동(感動)하여 해(害)하지 .F 3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