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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선 정 (暴 先 亨) 口밀성박씨 口소재지 · 밀앙시 초동면 신 호 리 모선동 모선정(幕先亨)은 모선정(暴 先亨) 박수견(朴守堅)이 친상 (親喪)에 여묘(盧基) 3년을 마 치고도 귀가하지 않고 묘소에 서 곡읍(哭파)으로 세상을 마치 밀양시 펀(密‘陽市編) 니 향인(獅人)이 그 효성에 감복하여 여묘(盧훌)하던 집을 모선정(幕先亨)이라 이름하고 그 주위 산천과 동(洞) 이름도 모두 모선(暴先)으로 부르게 되었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에 그 집이 불탔는데, 영조(英祖) 연간에 공의 9세손 증엽(增睡)이 여러 종원(宗員)과 의논하여 중건한 집이다. 모선정공(幕先亨公) 박수견(朴守堅)은 송은(松隱)선생의 현손이며, 인당(忍堂) 소(昭)의 증손이다. 점필재(伯畢짧)선생의 문인(門人)으로서 학문이 정심(精深) 하고 효성이 순독(純驚)하여 여묘(盧훌)하여 집을 짓고 두문불출(柱門不出)하며 종신토록 애모(哀幕)하니 관부(官府)에서 그의 효행의 지극함을 계달(양達)하여 나라에서 참봉(參奉)으로 여러 번 불렀지만 사절하고 나가지 아니하였다. 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