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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남 서 원 (辛南書院) 디 밀성박씨 口소재지 · 밀앙시 무안면 정곡리 신남서원(辛南書院)은 정국군(靖 國君) 박위(朴威)공과 소총재(小家 宰) 박기(朴홈)선생 부자의 위업(偉 멜양시 편(密|傷市細) 業)을 추앙하던 밀양사림의 공의(公議)로써 두 분을 사향(社享)하기 위하여 1822년(순조22, 임오)에 후손 기성(基聖)의 주청(主請)에 사림의 호응으로 신남 서원(辛南書院)을 세웠는데, 사당은 상모사(尙幕洞) 강딩-은 경보당(景報堂)이 라 하였다. 1868년(고종5, 무진) 서원훼철령(書院뿔澈令)에 의하여 사당과 원호 (院號)만 철거하고 경보당(景報堂)으로 이름을 바꾸어 후손들이 재실(짧室)로 봉향(奉享)해왔다 1981년(신유)에 후손 지영(志永), 유표(兪杓), 창규(昌圭), 종규(鐘圭) 등이 전 종원의 합의를 얻어 서원을 복원하기 위하여 상모사(尙幕 洞)를 중건하고, 1984년(갑자) 2월에 사림의 참집(參集)으로 서원복원교유제 (書院復元告 由쩔)를 거행하였다. 1996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 256호로 지 정되었다. 정국군(靖國君) 박위(朴歲)는 고려 때 김해부사(金海府使)로서 산성 (山城)을 축조하고 대마도를 쳐 적선 300척을 소진(燒盡)하므로 적의 침범을 막고, 조선 태조(太祖) 성계(成桂)와 함께 창왕(昌王)을 폐하고 공양왕(옆讓王) 을 추대한 공으로 충의백(忠義伯)에 훈봉(勳封)되고, 태조를 따라 위화도(威化 島)에서 회군(며軍)한 공으로 정국군(靖國君)에 녹훈(錄勳)되었다. 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