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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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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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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군 성리 삼기의 산음에 재실 하나를 지어 액호가 봉산재다. 이는 나의 선조 가선대부 두촌공 할아버지의 묘각이다. 부군의 묘소는 곡내 묘좌에 있으니 거리가 가깝다. 두촌공은 졸당선생의 장자로 밀양 삽포에서 전 가족이 삼기의 송지촌에 다 함께 취하여 이거하니 산과 물이 좋은 곳이더라. 오래전부터 봉산재가 있었으니 졸당 할아버지의 묘각이었는데 봉기리에 옮겨 짓고, 재호를 고쳐 봉양재라 하다. 이의 재실은 승계하는 뜻의 연고에서 봉산재이다. 재실의 범위가 다섯 기둥에 네칸으로 지으니 정기가 채색을 띄고 빛나며 안개가 서린 듯하며 오잠의 맑은 가을에는 봉이 울며 나래를 편듯하고 삼기의 문물은 천년이 흘러도 빛이 맑으며 옥산정 여덟나무 솔은 오백년이 지나도 울창하니 악견산의 능선 아래이다. 자손이 여러 고을에 나뉘어 살면서 매번 모여앉아 화목을 돈독히하니 가히 사씨가의 보수와 비할만하고 또한 왕시의 괴음과 다를바 없다 하리라. 재실일의 시작은 기사년에 창의하여 경오년에 낙성하니 일조일석에 몇 사람의 재물과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전 후손들이 부지런히 경영한 성의로 이룬 것이다. 그러나 성의가 있고 힘이 없어도 이루지 못할 것이요, 힘은 있어도 성의가 없으면 역시 이루지 못하는 것이리라. 추진한 자는 불초(종환)이고 동욱이가 심부름을 했다. 이에 재물을 넉넉히 낸 자의 기록이 없어서는 되겠는가. 다른 현판에 기록하여 보이게 한다. 시전에 이르기를 「일찍 일어나서 밤에 잘때가지 너를 낳으신 분에게 욕되게 하지 말것이며, 또한 너의 할아버지를 염려하지 말고 그 덕을 닦으라 하니 만약 몸에 일점이라도 그 덕을 손상케하면 곧 이것이 선조의 백선의 여음을 없애는 것이니 가히 그 덕을 생각지 아니하여 선조가 창업한 유덕을 잊어서는 되겠는가」 하였다. 일후 우리 종족은 이 재실에 모일 적마다 이 말을 항상 명념하여 잊지 말것이며 의를 생각할지리라. 세 신미년 추 칠월 일에 후손 종환 삼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