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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은 삼가의 이름난 산이다. 울퉁불퉁하고 서로 얼키어 맑은 기운이 서리어 맺었으며 그 아래 금성마을이 있으니 우리 박가의 대대로 사는 곳이요, 이 산 줄기에 임좌로 높이 봉한 것은 나의 십삼대조고 사복시정공 휘 蕡(분)과 및 배위 숙인 정선전씨의 쌍봉이요, 그 뒤 해좌원은 공의 세째 아들 휘 仁元(인원) 통정대부공과 배위 숙부인 청주경씨의 쌍봉이다. 사복정공은 태사공의 십일대손이요, 이조참판 졸당공의 증손이요, 찰방 송산공의 아들이다. 영매한 자질로서 정밀한 공부를 지어 명망이 당시에 높으셨다. 옛적에 후손들이 재계하는 집을 묘 아래 세워 금성이라고 현판한 것은 산 이름을 인해 길이 추모한 뜻이다. 세월이 여러번 바뀌어 집이 그의 허물어진 고로 정축년 종의가 일어나 세거한 마을에 세우고 옛 현판을 세우니 묘에 가기가 심히 멀지 않고 또한 수호의 편의함을 인한 것이다. 역사를 마침에 종중 부로께서 종섭에게 실지를 기록하라 명커늘 감당치 못함으로 사양해도 얻지 못하고 말하기를, 대개 사당과 묘는 비록 정령과 체백이 같지 아니하나 자손의 추모하는 정성은 한결같다. 그러므로 주부자께서 특별히 의로서 묘제의 의식을 일으켜 가례중에 들내어 백세에 바뀌지 않은 뜻뜻한 법을 정하였으니, 이는 천리 인정에 마지 못할 것이다. 슬프다, 이 땅은 선조의 지친 향기가 멈춰있는 바요, 의리의 간직한 바요, 뽕나무와 재나무에 손때가 옛날과 같으니 어찌 다만 묘에 올라가 추모할 뿐이리요. 땅을 보고 생각하고 物(물)을 보고 느끼고 일에 나아가 지경에 임하여 나타나 계심을 마음에 잊지 않은 것이 이 추모의 지극함이다. 또 세일제할때 자손이 다모여 재실에서 재계하고 묘에 올라 시수를 드리어 공경하고 조심하여 여렴풋이 보이는 것 같고 숙연히 들리는 것 같아서 천재의 먼것을 깨닫지 못하고 제사를 마치고 항렬따라 앉자 화한 기운이 무무르녹아 먼자도 가깝고 소원한 자도 친하여 오늘날 종족이 실로 옛날의 형제임을 알고 부모를 같이 한 정의를 미루어 밝힌다면 효제의 마음이 어찌 우연히 나지 않겠는가. 우러러 원하오니 제종들은 오늘날 다시 세우는 것을 능사로 하지말고 선조의 학을 배우고 선조의 행실을 행하여 길이 밝은 경계를 받들어 대대로 어긋남이 없는 것이 이 추모의 지극한 법이요, 이 재실의 지킴도 스스로 그 가운데 있을것이요. 더욱 선조에게 빛이 있을 것이니 어찌 서로 힘써지 않겠는가. 불초 이로써 스스로 힘쓰고 또한 후손에게 바라는 바이다. 기묘년 3월 일 13대손 종섭 삼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