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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嘉(삼가) 고을 大平(대평)은 朴拙堂先生(박졸당선생)의 後孫(후손)들이 世居(세거)한 고장이며 淸德(청덕)과 文學(문학)으로 고을에 알려진 氏族(씨족)이다. 近來(근래)에 道陽居士(도양거사) 諱(휘) 道根翁(도근옹)이 槽項(조항)에 처음 터를 잡고 居住(거주)하였다. 公(공)은 性品(성품)이 剛毅(강의)하고 豪爽(호상)하며 文武(문무)의 學文(학문)을 닦고 나라를 救濟(구제)할 큰 뜻을 가졌는데 其時(기시) 宮紀(궁기)가 紊亂(문란)하여 國政(국정)이 날로 그릇되어 가는 것을 보고 벼슬할 뜻을 버리고 孝悌忠信(효제충신)을 實踐(실천)하여 一生(일생)을 마쳤다. 公(공)의 六代宗孫(6대종손) 東郁君(동욱군)이 公(공)의 實踐(실천)한 德行(덕행)을 追慕(추모)하여 丙寅年(병인년)에 宗中輿論(종중여론)을 合一(합일)하고 財物(재물)을 가볍게 義(의)를 重(중)히 생각하며 精誠(정성)을 다하여 三間(삼간) 齋室(재실)을 所居(소거)동리 중간에 建立(건립)하니 華麗(화려)하지 않고 檏實(박지)하고 道陽齋(도양재)라 이름하였으니 公(공)의 號(호)를 재호로 하였다. 東郁君(동욱군)이 찾아와서 記文(기문)을 請(청)하기에 나로서 不文(불문)으로 固辭(고사)하였으나 請(청)에 못이겨 깊이 생각해보면 道(도)는 高遠(고원)하고 아득한 것이 아니라 日常生活(일상생활)과 道德(도덕) 卽(즉) 人倫(인륜)의 實踐(실천)에 있는 것이다. 修身(수신)하면 君子(군자)요 그르치면 小人(소인)이 되고 破壤(파양)하면 짐승이 되는 것이 여기에 있다. 祖先(조선)이 後孫(후손)에게 물려주고 子孫(자손)이 祖先(조선)을 追慕(추모)하는 것이 道(도)이다. 公(공)이 平素(평소)에 修身(수신)하고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 人倫道德(인륜도덕)에 있었으니 後孫(후손)에게 물려준 것이 正大(정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後孫(후손)들이 人倫(인륜)이 破壤(파양)된 오늘날에도 變(변)함없이 祖先(조선)의 敎訓(교훈)을 지켜서 齋室(재실)을 建立(건립)한 것이 道德(도덕)의 實踐(실천)없이는 될 수 없는 것이다. 陽(양)이란 밝고 明朗(명랑)한 뜻이라. 햇빛이 비치는 곳에 萬物(만물)이 자라서 結實(결실)하는 것이니 道陽(도양)의 齋號(재호)가 重大(중대)한 것이다. 齋舍(재사)는 外貌(외모)만 취할 것이 아니라 祖先(조선)의 큰 德(덕)을 잊지 않고 修身(수신)하는데 있는 것이다. 이 齋舍(재사)에 오르는 사람을 祖先(조선)의 孝悌(효제)하고 忠信(충신)한 行誼(행의)를 追慕(추모)하고 講明(강명)하여 心法(심법)을 삼고 感發(감발:느끼고 발전하는 것)하여 修身(수신)하고 異敎(이교)와 邪說(사설)에 흔들리지 아니하면 道(도)가 여기서부터 나서 道德(도덕)이 復活(부활)될 것이며 公(공)의 遺風(유풍)을 崇奉(숭봉)한 것이 되는 것이니 道陽齋名(도양재명)이 여기 있는 것이니 거룩하지 아니한가. 朴氏(박씨)들은 힘쓸지어다. 善山(선산) 金煉(김련) 撰(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