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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圃(죽포) 朴公(박공)이 사는 집 옆에 작은 집을 하나 지어 늙어서 자고 修身(수신)할려고 計劃(계획)하다가 成就(성취)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지 60여년 만에 公(공)의 後孫(후손)들이 公(공)을 追慕(추모)하고 公(공)의 뜻을 繼述(계술)하여 자그마한 齋室(재실)을 洞里(동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公(공)의 號(호)를 따서 竹圃齋(죽포재)란 額(액)을 달고 泰坤(태곤)에게 記文(기문)을 付託(부탁)하였다. 생각해보니 當時(당시) 뜻을 이루지 못하고 世上(세상)을 버린 지 數十年後(수십년후) 只今(지금) 建立(건립)한 것은 늦은 감이 있다. 그러나 齋室(재실)을 짓는 것에 早晚(조만)과 遲速(지속)은 形便(형편)에 따른 것이니 早速(조속)히 建立(건립)한 것은 多幸(다행)하고 늦고 천천히 지은 것은 不幸(불행)한 것이냐. 그렇지 않은 것은 어떤 연유이냐. 速(속)히 建立(건립)하고도 繼續(계속)하지 못하고 허물어지고 廢屋(폐옥)이 되어 아름답게 바라보이던 齋室(재실)이 순식간에 없어지면 어찌 多幸(다행)한 것이랴. 物力(물력)이 없어서 死後(사후)에 지어도 子孫(자손)이 잘 지켜 나아간다면 이것이 多幸(다행)한 것이니 속히 짓고 늦게 짓고 하는데 善惡(선악)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끊임없이 繼述(계술)해 나가는 것이 어려운 것이니 이와같은 道(도)를 쉽게 말할 수 있겠느냐. 父祖(부조)께서 遺言(유언)으로 남긴 것을 子孫(자손)이 晝夜(주야)로 잊지않고 잘 받들어서 齋室(재실)을 지었으니 竹圃公(죽포공)의 諸孫(제손)들은 祖先(조선)의 뜻을 잘 繼承(계승)하였고 또 그 後孫(후손)들도 이와같이 한다면 이 齋室(재실)은 永久保存(영구보존)될 수 있을 것이라고 期約(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큰 多幸(다행)인 것이다. 또한 公(공)의 큰 뜻은 齋室(재실)을 짓는데만 있는 것이 아니고 閒暇(한가)할 때에 求志(구지)의 殿堂(전당)으로 活用(활용)하여야 할 것이다. 求志(구지)란 古人(고인)의 書(서)를 읽고 模範(모범)으로 삼아 修身(수신)하여 善人(선인)이 되고 齊家(제가)하여 모든 家族(가족)을 善人(선인)으로 만드는데 뜻이 있는 것이니 여기서 修行(수행)하여 道理(도리)를 환이 알고 익혀야 하며 또한 祖先(조선)을 잊지 말고 큰 德(덕)을 닦는 것이 祖先(조선)을 잊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後孫(후손)들이 부지런히 힘쓰기를 公(공)이 바라던 뜻이니 이 뜻을 變(변)함없이 子孫(자손)들이 繼承(계승)해 나아간다면 이만한 大事(대사)는 없을 것이다. 齋室(재실)은 三間(삼간) 二室(이실)이며 垣墻(원장)이 둘려있고 洞里人(동리인)의 말소리를 들을 程度(정도)로 隣接(인접)하여 있다. 四方(사방) 景致(경치)는 말할 것이 많지만 이 齋室(재실)에 올라보면 알것이니 이에 그친다. 檀紀(단기) 4302年(년) 己酉(기유) 冬至節(동지절) 族孫(족손) 泰昆(태곤) 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