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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梅山(황매산) 동쪽에 三山(삼산)이 아울러 섰고 錦江水(금강수)가 그 앞을 둘러 있고 옆으로 돌밭 냇물의 맑게 흐름이 있으니 이것이 南方(남방)의 아름다운 山水(산수)다. 돌밭 시내 위에 높고 아름다운 亭子(정자)가 있으니 이름하기를 介于齋(개우재)라 하였음은 그 옆에 石溪(석계)가 있으므로 周易(주역)의 介于石(개우석)을 引用(인용)한 것이다. 그르므로 國子生(국자생) 朴公(박공) 鳳善(봉선)이 그 땅에 살아 일찍 집을 지어 스스로 편안할려고 하였으나 미쳐 이루지 못하였으며 公(공)의 아들 永羲(영희)가 뜻을 이어 이루어 그 아름다움을 지키고 뜻을 이루는 사람은 公(공)의 孫子(손자) 瑛柱(영주)다. 내가 일찍 親舊(친구) 鄭世煥(정세환)에게 들으니 齋室(재실)이 山水(산수)가 아름다움을 다하였다 하니 또한 瑛柱君(영주군)이 家聲(가성)을 이어 記錄(기록)하여 祖先(조선)의 뜻을 끊기지 않고 이었으니 이제 瑛柱君(영주군)이 검은 상복을 입고 내집에 찾아와 記文(기문)을 請(청)하거늘 내가 말하기를, 슬프다! 孔子(공자)가 말하기를 그 아버지를 알지 못하거던 그의 아들을 보라 하였으니 이러한 孫子(손자)가 있으매 그 祖父(조부)의 어짐을 가히 알 수 있다. 일찍 成均館(성균관)에 올라 進士(진사)가 되고 다시 더 나아가기를 취하지 않고 유연하게 世上(세상) 티끌에서 때묻지 않고 마침내 名山(명산)과 麗水(여수) 中(중)에서 늙었으니 너무나 이 介于石(개우석)에 종일 앉아있는 君子(군자)와 같더라. 비록 뜻을 이어 지키는 어려움이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한가지 걱정하는 바이다. 이제 그대가 先業(선업)을 끊이게 아니하고 여기서 노래하고 여기서 글 읽고 여기에 벗을 모아 學文(학문)을 講論(강론)하고 禮(예)를 행하였은 즉 이것이 眞實(진실)로 그 祖父(조부)의 孫子(손자)가 되고 이 亭子(정자)의 하옴이 있음인 즉 내가 瑛柱君(영주군)을 위하여 힘쓰게 할지어다. 崇禎(숭정) 五年(5년) 乙丑(을축) 鞠有(국유) 黃花(황화) 晦堂(회당) 張錫英(장석영) 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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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당공파 후손이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