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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에 재사를 짓는 것이 그 일이 대개 같으되 뜻을 둔 바가 각각 다른 것이 있다. 산과 물의 절승한데 나아가서 샘물과 돌맹이를 장점하고 연기와 노을을 관령하여 학문을 갈고 닦아 성정을 기르는 자는 지경을 취함이요. 마을의 곁에 나아가서 생각을 선조에 행덕에 붙이고 생각을 桑梓(상재)에 붙여서 인륜을 돈독하고 일가를 친히하며 손님과 친구를 맞아하는 자는 도의를 취하는 것이니 대개 두가지를 겸하여 두는 자가 적은데 박씨의 碧巖齋(벽암재) 같은 것은 이른바, 겸하여 둔 것이 아니겠는가. 가수는 본래 산과 물이 좋은 고을이라 재실이 대병면 율정촌에 있는데 마을에 거주하는 박씨가 지은 것이다. 국조 長陵(장릉) 년간에 군기시별좌 벽암공 휘 래가 지조가 굳세고 경학을 연구하여 울연하게 문학의 이름이 있었다. 백씨, 계씨는 포암과 금암으로 더불어 아름다움을 닦고 꽃다움을 연하여 유림의 긍식함이 되어 가정 학문의 전통을 열어서 삼암 독우의 호칭이 있는 전통을 드리우는 선조가 됨이 부끄러움이 없도다. 고려 말엽에 충숙공 송은선생의 아들 증이 이조참판 拙堂公(졸당공)이 능히 선조의 공렬을 이어서 일문의 파조가 되고 이후로 명석한 자가 많이 나서 대대로 그 아름다움을 이어서 江右(강우)의 빛나는 씨족이 되었다. 후손 洪濟(홍제)가 명령을 갖고 춘산이옹 相學(상학)의 지은 바 행장을 싸가지고 나를 찾아와 기문을 청하니 대개 선조를 생각하고 종족을 모아서 항상 추원하고 강목하는 도의를 두어서 그 지경에 무거움을 취함이 없으나, 사람의 마음이 또한 지경을 따라서 인과 지혜의 성정을 도와서 기름이 있는 고로 맑고, 넓고, 깊고, 뛰어난 경치를 대하면 반드시 뛰어나는 취미가 있어서 세상 생각이 사라짐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그 지경이 소이가 있어서 부리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공이 스스로 푸를 벽자(碧)로 아호를 쓴 것은 그 뜻을 가히 미루어 연이어야 하겠다. 자고로 뜻과 절개가 있는 선비는 물건을 인해서 뜻을 부탁하나니 저 바위 곁에 소나무가 해가 차가워도 홀로 푸른 빛을 띄고 있는 것은 공이 이연이 묵묵히 계합한 바가 스스로 늦은 시절을 보존함을 부탁한 것이다. 지금 이 재실을 짓고 이름을 한 것은 마땅히 장차 그 자취를 미루어 생각하여 그 뜻과 도의와 풍유와 모범을 거슬러서 구하면 비록 세대가 이미 멀어도 그 자취를 구하고져 하는 자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을 얻어서 그 뜻을 부탁한 바의 물건을 연구하면 차가운 해의 소나무를 보아서 공의 마음과 자취를 또한 가히 얻을 것이다. 하물며 지금 오륜과 삼강이 패하여 무너지고 邪說(사설)이 세상에 가득찬 것이 한 겨울에 엄숙한 서리와 눈의 혹독한 것뿐만 아니리요, 진실로 차가운 소나무가 늦게 푸른 절개와 같지 아니하면 스스로 서기가 어렵도다. 공의 당시에 취함이 있어서 후손에게 끼친 자가 거의 미리 오늘을 위하여 꾀한 것 같고 후손들이 특히 이 기문을 이 재실에 거는 것이 또한 기다림이 있는 것 같으니 어찌 심상하게 선조를 생각하는데 비유하리요. 비록 선조를 생각하는 도리가 재실이 높은데 있지 아니하고 선조의 정신과 심법을 계술하여 욕됨이 없이 하는데 있는 것이니 이것이 없으면 저기 샘물과 돌맹이와 연기와 노을의 맑고 넓고 깊고 뛰어난 것이 밖이요, 끝이니 이것이 또 이 재실에 거쳐하는 자가 마땅히 생각할 바이고 내가 써 기문하는 바이다. 기묘년 복양월 기망에 완산 이우섭은 기문함.